「죄르지 리게티의 현악 작품들」

‘영원한 이방인이자 세계시민’. 필자는 죄르지 리게티의 삶과 작품세계를 그렇게 요약하고 싶다. 1923년 당시 루마니아 땅이었던 지벤뷔르겐(오늘날 트랜실베니아)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유태계 헝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나치즘과 2차대전 그리고 공산혁명이라는 발칸의 격동적인 역사를 겪고,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로 망명한 후, 오스트리아 국적으로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고 있는 리게티의 인생경로. 그것은 애초부터 타자 혹은 소수자의 삶이 아니었을까. 누군가도 지적했듯이 이방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조건이 바로 그의 부단한 창조성의 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하나의 양식에 안주하거나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것. 그 찾아나섬의 길은 어떤 정해진 목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작곡가 자신의 표현대로) “맹인이 미로에서 더듬거리며 한발 한발 내딛는 것”과 같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끊없는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지만, 어떤 류의 이데올로기도 따르지 않고 어떤 그룹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작곡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진 않지만 그 모든 것에 열려있는 것. 이러한 것이야말로 – 루마니아 민요에서 아프리카의 실로폰음악까지, 치코니아의 캐논기법에서 총렬음악의 원리까지, 보쉬의 회화에서 에셔의 그래픽까지, 루이스 캐롤에서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세잔느의 정물화에서 분자생물학, 프랙탈기하학, 카오스이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을 자신의 고유한 창작활동으로 포섭하는 리게티의 예술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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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게티의 현악작품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워낙 다작가가 아닌 지라, 전체 작품 수도 헝가리 시절의 것들을 제외하면 50여곡이 채 안된다. 그 중 현악 작품은 헝가리 시절의 두 곡을 포함하여 모두 7곡 정도다. 첼로 소나타(1948/53), 현악사중주 1번(1953~54), 첼로 협주곡(1966), 현악사중주 2번(1968), 현악합주 혹은 12명의 독주 현악주자를 위한 <분지들Ramifications>(1969), 바이올린 협주곡(1990/92),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올라 소나타(1991-94).

이 작품들은 각기 당시의 리게티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1950년대 초반 작품에서 여전히 자신의 젊은 시절 이상이었던 바르톡의 영향이 두드러진다면, 60년대 작품들에서는 이른바 리게티 양식으로 알려진 음향작곡 기법과 정지된 음악의 표상이 잘 드러난다. 창작의 위기 내지 새로운 작곡 지형을 찾기 위한 모색기였던 70년대에는 현악 작품이 없으며, 폴리리듬, 폴리메터의 극도로 복잡한 폴리포니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80년대에는 주로 건반 악기, 특히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몰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시기 리게티는 평균율을 벗어난 새로운 조율법과 새로운 유형의 화음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를 현악기를 통해 실현하고자 시도한다. 이 시기에 현악기 만을 위한 작품은 없지만,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호른트리오>는 바이올린에 대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이 작품의 창작 과정에서 초연을 담당했던 사쉬코 가브릴로프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바이올린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리하여 비로소 바이올린 협주곡도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과 비올라 소나타는 20세기 현악 작품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리게티에게 현악기는 기본적으로 선호되던 악기는 아니었다. 그가 처음 접한 악기는 피아노였고, 그것도 아버지의 반대로 열 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늦게 시작한 악기 수업에 핸디캡을 갖고 있던 리게티는 콘서바토리에 입학한 후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악기에 대한 감각과 지식을 얻기 위해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이 때 팀파니, 오르간과 함께 현악기의 가능성에 정통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한 악기가 첼로다. 리게티는 악기를 연주할 때 연주자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는 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그 악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작곡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 중반 기돈 크레머의 바이올린 협주곡 위촉을 거절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각각의 악기가 가진 정신에서 출발하여 그 고유한 표현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리게티의 악기관에 비추어볼 때, 자신이 완전히 통달하지 않은 악기에 대한 주저함은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리게티는 악기를 결코 추상적인 ‘성부’로 사고하지 않으며, 언제나 감각적으로 구체적인 악기나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다. 악기의 메카니즘과 소리구조에서 적합한 음향을 내도록 하는 것이 그의 악기론의 기본 전제다.

첼로 소나타 (1948/53) 1악장 “대화”, 2악장 “카프리치오”

이 작품의 탄생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게티는 현악 작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고 싶어, 자신이 좋아하던 악기인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1948년 리게티는 남몰래 짝사랑한 한 첼로 전공 여학생을 위해 첼로 독주곡을 써서 헌정했는데 (1악장 “대화”), 그녀는 이 작품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했고, 연주도 되지 않은 채 잊혀졌다. 그 후 1953년 첼리스트 베라 데네스로부터 첼로 작품을 위촉받고, 이전에 써 놓은 “대화”에 빠른 악장을 덧붙여 완성한 작품이 2악장짜리 첼로 소나타다. 1948년 당시 리게티가 좀 더 대중적으로 작곡하려고 노력했었다면, 1953년 2악장을 작곡할 때는 파가니니 같은 아주 비르투오소 한 곡을 의도했다. 그리하여 버르토크에 경도된 아주 어렵고 ‘모던’한 작품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당시 공산 헝가리의 엄격한 검열로 인해, 작품의 출판도 공식적인 연주도 모두 금지되었다.

현악사중주곡 1번 “야상적 변용” (1953/54)

1956년 11월 소련군의 진주로 헝가리 민주화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리게티는 서방으로의 망명을 결심한다. 그해 12월 국경으로 가는 열차에 오르면서 리게티가 지니고 나온 작품은 단 하나, 바로 현악사중주곡 1번이었다. 리게티에게 이 작품은 학창시절 우상이었던 버르토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길을 찾아간 최초의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물론 후일 리게티 자신도 인정했듯이 이 작품이 여전히 ‘버르토크적’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리게티 작품에서 보여지는 특징적인 모습들이 이미 이 곡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하모닉스 음들로 파도처럼 상승했다 하강했다 하는 글리산도는 무지갯빛으로 분광하는 정지된 음향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는 “야상적 변용”이란 부제가 붙어있는데, 리게티에 따르면 “변용”이란 제목은 “테마 없는 성격변주의 연속”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단지 변주되어야 할 “테마”가 없을 뿐, 기본적인 음악적 아이디어가 항상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일종의 변주형식이다. 여기서는 두개의 장2도가 반음거리로 연결된 선율형상(예컨대 c-d-c#-d#)이 하나의 “원형세포”로 작용한다. 이 두개의 장2도는 다양한 변형태와 리듬으로 등장하는데, 악곡의 진행과정에서 음고가 단3도, 장3도, 완전 4도, 단6도의 형상으로 변형되기도 하며, 때로는 원형세포의 변화가 너무 심해서 원형을 인식하기 어렵기도 하다. 20여분 가량의 단악장 형식인 이 작품은 몇몇 특징적인 부분들로 구분되는데, 원형세포가 제시되는 도입부 뒤에 박절변화가 빈번하며 민속음악적인 음조로 활기차게 움직이는 ‘비바체 카프리치오조’, 느리고 슬픈 분위기의 ‘아다지오 메스토’ 등이 이어진다. 뒤이은 ‘프레스토’가 스케르초에 대한 패러디처럼 들린다면, ‘안단테 트랑낄로’ 후에 나오는 ‘템포 디 발스’는 왈츠에 대한 재기발랄한 풍자다 (이런 점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영향 또한 엿볼 수 있다).

리게티는 이 작품이 당시 공식적으로 허용된 ‘모던’의 경계를 넘어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당시 공산 독재의 완벽한 통제하에서 ‘내적인 망명’을 하던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냥 ‘서랍용’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 작품의 초연은 1958년 비엔나에서 이루어졌다.

첼로 협주곡 (1966)

서방으로 온 리게티는 곧바로 슈톡하우젠과 아이메르트의 초청으로 쾰른으로 가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면서, 다름슈타트 국제하기 강습회 등에서 서유럽 아방가르드의 창작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던 중 1960년 쾰른에서 열린 세계현대음악제(ISCM)에서 관현악곡 <환영>, 1961년 도나우에슁엔 음악제에서 관현악곡 <아트모스페르> 초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작곡가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한다. 마치 거대한 음향 덩어리가 상상의 공간에서 정지된 듯 흘러 지나가는 듯한 음향 흐름은, 분자화된 작품의 내적인 구조에 몰두하던 총렬주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음향 세계로서 주목받았다. 이른바 ‘음향작곡’이라 지칭되는 이러한 작곡 방식은, 정지한 듯 덩어리로 흘러가는 음향복합체 속에서 미시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부진행(미크로폴리포니)을 특징으로 한다. 첼로 협주곡은 <아트모스페르>로 대표되는 60년대 초 리게티 양식이 점차 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1악장이 <아트모스페르>처럼 정지된 음향 흐름의 특징을 갖는 반면, 2악장은 성악 앙상블곡 <아방뛰르>(1962)나 <누벨 아방뛰르>(1962/65)처럼 거칠고 자유분방한 음향들의 교차로 이루어진다.

음향작곡에 몰두하던 60년대에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은 독주 첼로가 마치 무(無)에서 음이 서서히 생겨나듯이 들릴 듯 말 듯한 극히 작은 소리(pppppppp)로 e’음을 연주하면서 시작한다. 이 지속음(e’)은 막힌 듯한 d선에서 뿐 아니라 밝은 a선에서도 연주되며, 여러가지 하모닉스들과 주법으로 변화를 주면서 18마디에 걸쳐 다양한 음색으로 변화한다. 어떤 악기도 첼로만큼 그렇게 한 음으로 다양한 음색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리게티는 첼로의 다양한 음향적 표현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당시 자신의 음향 작곡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 작품의 마무리 또한 인상적인데, 소리없이 지판 위에서 왼손의 움직임만으로 이루어지는 ‘속삭임의 카덴차’가 나온 후 10초 간의 정적이 이어진다. 무에서 서서히 생겨나왔듯이 무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다. 헌정자인 지그프리드 팔름에 의해 1967년 베를린에서 초연되었다.

현악사중주 2번 (1968)

6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리게티 음악은 복잡한 미크로폴리포니적 성부망에서 성부 수도 줄어들고 촘촘한 음향복합체들도 점차 느슨해져 간다. 15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현악사중주 1번과 2번은 음악 어법 면에서 완전히 상이한 모습을 띤다. 2번에는 1번에서처럼 동기작법도 음악적 형상의 윤곽도 없으며, 오직 네 개의 성부들이 만들어내는 음향직조망 만이 존재한다. 총 20여분 길이의 5악장 구성으로, 빠르고 급작스런 움직임이 지배적인 가운데 섬처럼 중간 중간 정적이 등장하는 1악장, 정지된 음악의 표상이 투명한 현악사중주에 적용된 듯 조용하게 흘러가는 2악장, 다양한 종류의 피치카토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3악장, 거칠고 위협적인 4악장, 그리고 구름처럼 퍼져가는 아주 부드러운 5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고유의 표현적 특성을 지니는 다섯 악장들은 마무리되는 방식 면에서 서로 연관성을 갖는다. 각 악장은 “일종의 감속 장치처럼 혹은 바늘에 찔린 풍선에 점차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점차 조용히 사라져 가는데, 각 악장의 성격이 상이하므로 이러한 종결이 만들어지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1악장에서 빠른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면서 넓게 도약하던 음고 진행이 트레몰로로 약화되고 다이내믹도 점차 줄어들어 아주 조용한 하모닉스 음향으로 이어졌다가 점차 여리고 느리게 사라져간다면, 느린 지속음들의 2악장에서는 강한 소음의 등장 이후 금속적인 음향에서 점차 부드러운 음향으로 변화하면서 조용히 사라져간다. 3악장에서는 피치카토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음역이 점차 줄어들면서 마침내 한 음 위에서 소리가 사라지며, 압축적으로 응축된 4악장에서는 점차로 감속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종지하고, 부드러운 5악장에서는 네 악기들이 점차 흡사 글리산도처럼 극단적인 고음역과 저음역으로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그리고는 첼로협주곡에서처럼 10초 간의 정적이 이어진다.

현악오케스트라 혹은 12개의 독주 현악기를 위한 <분지들> (1969)

이 작품은 현악사중주 2번처럼 미크로폴리포니 작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과정에 나온 작품이다. 현악사중주에서 네 개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느슨한 성부들의 직조망을 의도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미분음들의 음향 섞임을 통한 또 다른 방식의 음향복합체를 시도한다. 12성부의 앙상블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그룹1은 그룹2보다 1/4음 정도 높게 조율된다. 여기서 작곡가가 원하는 것은 1/4음 그 자체라기 보다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미분음들의 부유하는 음향섞임이다. 연주 시 두 그룹들 간의 인토네이션이 동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리게티는 자신이 원하는 음향 효과를 위해 악보에 다음과 같은 지시 사항을 덧붙여 놓았다. 항상 1/4음 정도의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룹1은 언제나 약간 더 높은 듯, 그룹2는 약간 더 낮은 듯 연주해야 하며, 연습은 두 그룹이 완전히 따로 하고 리허설 때도 떨어져 앉아서 연주하다가 공연에서는 두 그룹이 나란히 함께 앉아야 한다. 그래야만 부유하는 음향의 섞임이 보증되기 때문이다.

분지(分枝)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좁은 음역의 성부망이 점차 가지쳐 나가며 확대되었다가 고음역의 한 음으로 수렴되고, 거기서 다시 여러 개의 선율선으로 확대되었다가 모이고 다시 가지쳐 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바이올린협주곡 (1990/92)

1970년대 후반 오페라 <그랑 마카브르> 이후 리게티의 창작 활동은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건강 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리게티 세대의 이른바 아방가르드 작곡가들 모두에게 70년대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와 모색의 시대였다. 수없는 고민과 다양한 예술적 자극을 통해 리게티는 점차 자신의 이전 양식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작곡 영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순(耳順)의 나이에 또다시 새로운 길을 출발했던 것이다. 80년대 중반 폴리리듬과 폴리메터에 몰두하면서 주로 피아노곡을 작곡했다면, 90년대 현악작품들은 평균율을 넘어서는 새로운 조율체계와 그에 따른 새로운 화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그에 따라 인위적인 평균율의 3도가 아니라 순정율의 자연 3도와 7도 미분음들의 독특한 음향이 곳곳에 배어있다.

이 작품에는 두 대의 악기(관현악의 독주 바이올린과 독주 비올라)가 콘트라베이스의 자연배음에 맞추어 스코르다투라(변칙조현)되는데, 거기서 만들어지는 부정확한 인토네이션이 흥미로운 화성적 색채를 빚어낸다. 특히 애잔한 독주바이올린의 아리아로 시작하는 2악장 “아리아, 호케투스, 코랄”은, 호른의 자연배음과 변칙조현된 악기들의 등장만이 아니라, 4개의 오카리나와 2개의 로터스플루트가 만들어내는 부정확한 인토네이션을 통해서도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음향의 강렬한 인상을 갖게 한다. 각기 “프렐류드”, “인터메초”, “아파쇼나토”라 이름 붙은 1, 3, 5악장에 비해, 2악장과 4악장 “파사칼리아”가 음악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1984년 사쉬코 가브릴로프의 위촉으로 1990년 우선 3악장 형태로 연주된 후 상당한 개작을 거쳐 (1악장은 거의 새로 구상됨), 1992년 5악장 형태의 최종판이 헌정자인 가브릴로프와 앙상블 모데른에 의해 쾰른에서 초연되었다.

비올라 소나타 (1991-94)

6개의 상이한 성격소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인토네이션을 이탈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아주 독특하고 낯선 소리가 특징이다. 느린 춤이라는 뜻의 1악장 “호라 룽거(Hora lunga)”는 루마니아 민요들을 연결한 듯한 민속적인 음조의 곡으로, 불가사의하고 퉁명스럽게 소리 울리는 C선에서만 연주된다. 실제로 이 소나타는 타베아 침머만의 C선 위에서의 연주를 들은 작곡가가 그 독특한 소리에 감명을 받아 구상하게 된 것이다. 이 곡을 쓰면서 리게티는 마치 비올라에 5도 아래 F선이 존재하는 듯 상상하면서 그 5번째, 7번째, 11번째 배음들을 썼다고 하는데, 이들은 평균율 체계에서는 ‘잘못된’ 인토네이션으로 들리는 음들이다. 2악장 “루프(Loop)”에서는 선율적-리듬적 형상이 반복되면서 확대되지 않고 오히려 훨씬 압축적이 되어간다. 3악장 “파차르(Fascar)”는 9마디의 5/8박자와 1마디의 7/8박자로 이루어진 유사민속주의적인 악구가 반복되면서 노래하듯이 표현적으로 연주된다. 4악장 “프레스토”는 8분음이 아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면서 6+4+4+6+4의 악센트 패턴으로 (이후에는 세분화되지만) 선율이 만들어진다. 5악장 “라멘토(Lamento)”는 2도와 7도 음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포르테시모의 느닷없음 불협화음과 피아니시모의 공허한 4도 음정 및 아주 멀리서 울려나는 듯한 하모닉스 중음주법이 인상적이다. 바흐의 무반주 조곡의 샤콘느를 연상시키는 6악장 “반음계적 샤콘느”는 거칠고 제멋대로의 3박자 춤곡의 특성을 지닌다.

이 소나타의 여섯 악장들은 상이한 발신인을 향하는데, 첫곡과 마지막곡은 타베아 침머만에게 헌정되었다.

『스트라드』 2001년 8월호, 6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