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에 앞서 지난 5월 3일에서 9일까지 서울과 수원에서는 “2002 아시아 현대음악제”가 개최되었다. <새 천년의 아시아 음악>이라는 주제 하에 열린 이번 음악제에는 3회의 관현악연주회, 7회의 실내악연주회, 2회의 전자음악연주회, 그리고 범패와 각국의 전통음악연주회 및 워크샵과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져,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 70여곡(관현악작품 12곡, 실내악작품 47곡, 전자음악작품 11곡)이 연주되었다. 주목할 만한 행사로는, 장한나가 윤이상의 <첼로협주곡>(1976)을 국내 초연한 개막연주회와 작곡가 진은숙의 최근작 <바이올린협주곡>(2001)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폐막연주회, 그리고 네델란드 뉴앙상블의 중국 문혁세대 작곡가들의 연주회와 로댕 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컴퓨터음악연주회 등이 있었다.
개막연주회가 열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수많은 청중을 끌어들인 흡인력은 아마도 장한나라는 이름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무엇을 연주하느냐는, 어떻게 연주하느냐 만큼 청중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장한나의 윤이상 <첼로협주곡> 연주는 충분히 주목할 만했고 또 의미 있는 일이었다. 바쁜 연주 일정 속에서 어려운 현대작품을 연습하고 충분히 소화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개의 유명 연주자들은 현대음악을 레퍼토리화 하는데 인색하다. 하지만 장한나는 결코 쉽지 않았을 선택을 했고, 세계적인 연주자답게 어려운 윤이상의 작품을 깊이 소화해내려는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본인에게는 아주 만족할만한 연주가 아니었을지 모르나 청중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향한 그의 진지함과 열정이 돋보인 자리였다.
폐막연주회에서 연주된 진은숙의 <바이올린협주곡>은 21세기 현대음악의 방향과 가능성을 생각케 한 작품이었다. 전통적인 4악장 구조와 복잡하지 않은 구성으로 아주 새롭고 흥미로운 소리를 들려준 이 협주곡은, 관현악의 섬세하게 직조된 매혹적인 음향들 뿐 아니라 독주 바이올린의 유니크한 소리탐색 등 새로우면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음악으로 청중의 호응을 받았다. 20세기 현대음악은 어렵고 복잡하며, 이해하기 힘들고, 지나치게 아카데믹하다는 통념이 퍼져있지만,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현대음악도 많다. 진은숙이 말하는 “복합적이지만 복잡하지 않는 음악”, 예컨대 개별 성부들은 복잡하지 않지만 그 개별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전체 음향은 다채롭고 복합적인 그러한 음악은, 과거로 복귀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우며, 익숙치 않은 소리이면서도 소통가능한 21세기 현대음악의 중요한 하나의 화두이자 가능성일 것이다.
뉴 앙상블의 “문화혁명 이후 중국의 신세대” 연주회는 90년대 이후 세계 현대음악계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문혁세대’ 중국 작곡가에 대한 집중 조명이란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50년대 태생으로 어린 시절 문화혁명을 겪고 모택동 사후 70년대 후반에야 서양음악을 본격 교육받기 시작한 이들 중국 작곡가들은, 전통과 현대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연주된 모후핑, 큐샤송, 슈슈야, 탄둔, 첸키강의 작품들은 이들이 구사하는 양식의 스펙트럼이 경극의 발성법이나 민요 선율의 사용에서 “음향작곡”, “기악적 연극” 혹은 “해프닝”까지 아주 폭넓게 걸쳐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컴퓨터음악 연주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전자음악 및 컴퓨터 음악의 경향을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갤러리라는 열린 공간, 특히 로댕의 조각들 사이사이에서 펼쳐진 음향들의 어우러짐이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전자-컴퓨터음악은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작품과는 애초에 다른 메카니즘을 갖는다. ‘무대’ 보다는 이와 같은 열린 공간에서 조명등으로 충분히 전자음악 감상에 적합한 고유한 아우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잘 보여준 행사였다.
국제적인 현대음악제의 개최는 국내 음악계에 여러 가지 면에서 자극제가 된다. 연주자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을 접하는 하나의 도전으로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으며, 훌륭한 외국 앙상블을 초청할 경우 수준 높은 현대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음악제의 개최가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한국 창작계에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대작품에 대한 상시적인 연주와 감상 문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평소 현대음악에 무관심하던 음악가들이 이런 행사에서 창작곡을 연주하게 될 때 갖게 되는 거부감과 연주의 부실은 창작자나 연주자, 청중 모두에게 오히려 현대음악에 대한 반감을 낳게 할 뿐이다. 창작활성화를 위해서는 수준 높은 연주의 상시화가 필수적이다. 중국 현대음악의 새로운 경향을 자신의 레퍼토리화하여 순회연주를 다니는 뉴 앙상블을 보면서, 한국 및 아시아의 수준 있는 작품들을 레퍼토리화하여 연주하는 세계적 수준의 아시아 현대음악 앙상블의 존재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적인 현대음악 앙상블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직 한갓 꿈에 불과한 것일까?
『클럽 발코니』 2002년 7~9월호, 통권25호 Vol.8 No.3, 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