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
이희경 저 | 예솔 | 2004년 12월 27일
2004 문예진흥기금 지원도서

목차

서문에 대신하여

1장 프롤로그
2장 어린시절, 학창시절, 졸업 후 활동
3장 1950-60년대 한국의 현대음악
4장 윤이상과의 만남
5장 독일 유학, 새로운 세계 속으로
6장 한국 현대음악의 현장 ‘판 음악제’
7장 작곡가, 조직가, 교육가로서의 삶
8장 다양한 작품의 모습들
9장 감성이 배제된 이성의 음악
10장 한국 작곡의 미래

연보
작품목록
작곡가의 작품해설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문에 대신하여 


한국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는 우리 음악문화를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영역이다. 최근 들어 음악학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 작곡가 연구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체계적인 방법론을 세워나가야 하는 불모지의 분야다. 무엇보다 각 작곡가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들이 수집·정리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제대로 된 연보와 작품목록 작성이 이루어져야 하며, 작품의 의미연관을 밝혀내는 작품론과 작가론 등이 꾸준히 이어질 때, 비로소 작곡가 연구는 본래의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에 대한 기초 자료들에는 악보와 음반 뿐 아니라 작곡가가 직접 쓴 다양한 형태의 글들이 포함된다. 작가가 생존해 있는 경우라면, 인터뷰나 대담 역시 그 작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낳기는 하지만, 인터뷰나 대담은 작가 개인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 연구의 기초 자료일 뿐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문화사적인 의의도 지닌다. 『작곡가 강석희와의 대화』 역시 이러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그리하여 이 대담집은 그의 개인적인 작품 세계만이 아니라, 1930년대 태생인 그의 세대가 경험했던 문화적․예술적 환경, 그 세대가 가졌던 창작의 문제의식을 함께 다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나는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음악사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물론 그것은 강석희라는 한 개인에 의해 비추어진 모습이지만, 그러한 장면들이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축적될 때 한국의 현대음악사는 좀더 입체적으로 그 지형도가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강석희는 한국의 ‘현대음악’을 새롭게 개척해 간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66년 한국 최초의 전자음악 <원색의 향연>을 발표한 이래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 작곡계에 여러 자극을 주고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1969년부터는 현대음악제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서구의 현대음악을 알리고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뛰어난 작곡 스승으로서 많은 작곡가들을 길러낸 장본인이기도 한데, 그 중에는 진은숙 같은 세계적인 작곡가 뿐 아니라 일본인과 독일인 등의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강석희’ 하면 곧바로 ‘현대음악’이 연상될 정도로 그는 한국 현대음악의 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와의 대담을 통해 나는 그의 작품세계와 음악관을 분명히 드러낸다는 측면만이 아니라 20세기 후반 한국의 현대 음악 상황을 가능한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으면 했다.

이 대담집의 내용은 10장으로 구성된다. 우선 최근 몇 년간의 활발한 창작 활동과 전반적인 그의 작품 세계 및 작곡에 대한 생각 등에서 시작하여,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음악적 경험과 졸업 후의 활동, 1950/60년대 초창기 현대음악에 대한 다양한 경험들과 스승 윤이상과의 만남, 독일 유학 시기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다룬다. 이 속에서 당시의 문화적, 음악적 상황 및 강석희라는 작곡가가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어 한국 현대음악의 현장이랄 수 있는 ‘판 음악제’에 관해, 작곡가․조직가․교육가로서의 3중 역할에 대해,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 사이사이에 창작의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작품 이야기가 다루어지며, 마지막으로 작곡가 강석희의 작곡 스타일과 음악관 내지 미학적 입장, 그리고 한국 작곡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생각 등을 들어보았다. 9장과 10장 끝부분에는 작곡가 자신의 글 두 편—「작곡가란 어떤 존재인가」와 「한국 작곡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을 실었는데, 대담 내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도 하지만 작곡가 자신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생각에서 포함시켰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연보, 작품목록, 작곡가가 쓴 작품해설, 몇몇 자료 사진 및 인명 찾아보기를 덧붙였다. 

강석희는 어느 한국 작곡가들보다 자신의 활동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작곡가다. 그래서 혹자는 손을 대야 할 작곡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자료도 상대적으로 많이 정리된 강석희의 대담집을 내느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담집은 그러한 작곡가의 글쓰기와는 다른 작업이다. 왜냐하면 대담은 작곡가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듣고자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고, 때로는 그 이야기에 개입하여 새로운 질문이 제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데 익숙한 강석희에게 정리되지 않고 나온 말들을 그냥 활자화하여 싣는 형태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대담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의 ‘정리된 생각’을 읽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사유의 단편들을 생생하게 듣는 것이 훨씬 의미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굳이 ‘서면 인터뷰’가 아닌 ‘직접 대화’의 형식을 취했다. 아마 독자들 역시 한 작곡가의 생생한 ‘말’을 듣는 것이 훨씬 흥미로우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말’은 ‘글’과는 다른 생리를 갖는다. 걸러지지 않은 사유의 단편일 수 있는 ‘말’은 오랜 사유나 사색에 의해 씌어지는 ‘글’과 달리, 항상 논리적인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훨씬 생생하게 생각을 전달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말은 논의의 맥락에 따라 서로 모순적인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질적인 사유의 편린들을 드러내는 것이 그 작가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굳이 가려내고 정리하며 일관된 체계 속에 재정리하는 작업은 하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2004년 7-8월 강석희의 오피스텔에서 이루어진 여섯 차례의 인터뷰와 10월 초의 추가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가능한 한 준비되지 않은 현장감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기 때문에 사전에 자세한 질문 내용을 알려드리지 않았고, 인터뷰 정리 역시 대담자인 내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 비록 이 대담집이 작곡가 연구의 1차 자료적 성격을 띠는 것이긴 해도, 그러한 자료를 선별하고 배치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대담을 통해 강석희라는 작곡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한국 현대음악의 지난 몇십 년간의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 부분도 있었고, 상당히 도발적인 견해라 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그 세대의 문제의식이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읽히기도 했다. 내가 겪지 못한 한국 음악계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후 연구할 여러 과제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이 대담은 내게 아주 유의미했다.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한국 창작음악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작곡가에 흥미가 있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이 대담집이 유익하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다. 무엇보다 대담에 흔쾌히 응해주시고 흥미진진하게 얘기를 풀어주신 강석희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녹음을 채록하는 데 도움을 주신 홍은정 님, 그리고 어려운 출판 사정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악학 책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시는 예솔 출판사 편집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4년 12월 15일
이 희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