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르지 리게티, 21세기 현대음악의 멘토」

간명함의 매력과 유머의 힘

리게티 음악의 매력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 그게 무슨 매력이냐 반문한다면? 간명함의 ‘내공’이 주는 파워라 하자. 여든을 바라보며 쓴 성악 앙상블곡 <피리, 북, 깽깽이로>(2000)만이 아니라, 예순 즈음에 작곡된 <호른 트리오>(1982), 심지어 20대에 쓴 피아노곡 <무지카 리체르카타>(1951-53)나 30대에 나온 <현악사중주곡 2번> (1968)에서도 그의 음악이 지닌 압축적이고 명료한 표현은 난해하고 추상적인 ‘현대음악’의 표상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간명함은 단순함이 아니다. 진지함이 무거움은 아니듯이. 리게티 음악은 경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세계여서 흥미롭다.

이러한 간명함의 매력은 머릿속에 떠오른 최초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끊임없는 사색과 숙고를 거쳐 내적인 정합성을 지닐 때까지 치밀하게 정제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것이 추상적인 구조화의 결과라면 결코 귀로 쉽게 파악되기 힘들겠지만, 각 작품의 구체적인 음악적 표상에서 출발하는 경우라면 이러한 정제 과정이야말로 구성과 표현의 명료함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념과 구호가 난무하던 20세기 후반 현대음악에서 리게티가 갖는 가치는 이렇게 철저한 장인성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직관을 구체적으로 세공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는 데 있다.

리게티는 평생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곡의 수준에 이르고자 노력했고, 그러지 못한 것에 절망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도달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 찾아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내 음악이 이후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알지 못합니다. 매 작품마다 마치 맹인이 미로에서 그러하듯 여러 방향을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죠. 한 발 나아가면 그것이 과거가 되어, 다음 발걸음을 위한 여러 가능성들이 생기게 되니까요.”(1991년의 한 강연) 이로부터 10년 후 78세의 노(老) 대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혹시 자신이 죽고 난 후 누군가 부다페스트에 굳이 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죄르지-리게티-잘못 간 길”이라 붙여달라고. 농담처럼 던진 얘기지만 평생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헤매며 새로 길을 떠난 작곡가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말이다.

리게티 음악의 또 다른 매력은 유머다. 지나칠 만큼 엄밀한 작업 방식과 작품에 대해 가차 없이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 무겁고 심각한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바이올린 협주곡>(1989-93)처럼 대단한 작품을 써놓고도 “바이올린 곡을 쓰는 것은 내게 일본어로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작곡가. 악기를 연주할 때 연주자의 신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이 부족하면 작곡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아무리 거장의 문헌들을 철저히 공부하고 기법을 연구해도 손가락으로 느끼는 악기에 대한 감각의 부재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느끼는 완벽주의자. 이처럼 구체적인 감각에서 출발하여 그 악기의 고유한 표현 가능성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많은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머는 진지함을 무거움이나 비장함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동유럽 출신의 유대인으로 나치즘, 2차 대전, 공산 독재를 거치며 여러 차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가족을 유대인 수용소에서 잃은 그였지만, ‘죽음’이나 ‘종말’을 다룰 때조차 그의 방식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기보다는 차라리 초현실주의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역설과 유머를 즐기는 작곡가. 그의 제자 만프레드 슈탄케는 그런 스승에게 “채플리게티”라는 작품을 써서 헌정하기도 했다. 리게티의 마지막 작품도 특유의 유머와 기발함으로 가득 찬 산도르 뵈외레시의 시에 붙인 곡이 아니던가.

리게티 음악의 지도, 숨겨진 보물찾기

리게티의 출세작인 <아트모스페르>(1961)는 이전의 어떤 관현악곡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사운드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선율도, 리듬도, 화성도 없이 오직 거대한 음향덩어리의 연속적인 흐름만이 존재하는 음악. 마치 세잔의 정물화처럼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것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음악. 이를 위해 리게티는 ‘미크로폴리포니’(음향덩어리의 내부에서는 성부들이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개별 성부들의 움직임이 따로 들리지는 않는 폴리포니, 다시 말해 미시적으로만 작동하는 폴리포니)라는 자신의 고유한 어법을 창안했다. 하지만 1950년 부다페스트에서 처음 떠오른 ‘정지된 음악’의 아이디어가 ‘미크로폴리포니’라는 작곡 방식으로 구체화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956년 공산 헝가리를 떠나 서방 아방가르드에 합류한 리게티는 음렬음악의 구조적인 작곡 방식이나 전자음악의 새로운 소리 합성 원리를 습득하며, 자신이 꿈꾸었던 음악적 아이디어를 실현할 방법들을 벼려나갔다. 하지만 그에게 당시 현대음악의 모습은 귀에 들리는 구체적인 소리의 형상화보다는 악보 상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구조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비쳤다. 60년대 초 확립된 리게티 양식은 이렇게 당시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에 대한 비판적 대결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른바 ‘음향 작곡’ 혹은 ‘음색 작곡’ 시기의 리게티 음악 양식은 오히려 그 정점에서 다시 부정된다. 리게티는 자신이 개척한 새로운 지반에 집을 짓고 안착하기 보다는 “사방이 모래더미 뿐”임을 깨닫고 다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길을 떠났다. <아트모스페르> 이후 70년대까지의 작품들은 자신이 극단적으로 무력화시켰던 선율, 리듬, 화성을 다시 끌어들여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새롭게 다룰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었다. 서방으로 온 이후 리게티 작품 목록에서 동일 장르, 동일 편성의 곡이 드문 것은 매 작품마다 새로운 작곡 방식의 문제를 고민해나가는 그의 창작 태도에서 기인한다.

한편 70년대 리게티 음악의 한 단면인 오페라 <그랑 마카브르>(거대한 죽음, 1974-77)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해 있었다. 당시 관심을 갖던 찰스 아이브스와 팝 아트 및 재즈의 흔적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 작품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악에 대한 인용과 꼴라주가 사용되며, 종말과 죽음 혹은 부조리한 세계 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리게티 특유의 유머와 풍자적인 방식으로 익살스럽고 코믹하게, 초현실주의적으로 형상화되었다. 1978년 나온 쳄발로곡 <헝가리언 록>과 <헝가리 파사칼리아>은 대중음악에 경도된 혹은 19세기 양식으로 회귀하는 젊은 작곡가들의 경향에 대한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한 풍자적 작품이다. 리게티는 이미 낡은 것이 된 50/60년대 아방가르드의 수법을 더 이상 사용할 수도, 그렇다고 과거의 양식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여겼다.

몇 년 간의 공백 끝에 등장한 80년대 작품들은 예순을 넘은 이 작곡가가 새로운 음악적 지반을 찾아 땅을 일구고 길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았고, 이를 작품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연구를 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피아노 협주곡>(1985-88)이 폴리리듬에 의한 새로운 폴리포니 작법과 단순한 요소들이 사소한 변이를 통해 아주 복잡한 텍스처가 되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바이올린 협주곡>(1989-93)은 피아노라는 악기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평균율을 넘어서는 새로운 조율 체계와 그에 따른 새로운 화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평균율에서 벗어나기에 얼핏 잘못된 인토네이션인 듯 들리는 자연 배음의 독특한 음향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변칙조현된(스코르다투라) 독주 바이올린과 독주 비올라, 호른과 트롬본의 자연 배음 소리, 부정확한 음고를 내는 오카리나와 로토스플루트 및 리코더의 미묘한 화음 등. 이렇게 인위적인 평균율에서 비껴가는 자연 배음 소리들에서 리게티는 19세기적인 조성이나 20세기적인 무조성도 아닌 새로운 화성적 가능성을 보았다. 만년작인 <함부르크 호른 협주곡>(1999/02)은 그러한 문제의식의 결과 나온 작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호른의 자연 배음 소리는 리게티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료되었던 것으로, 루마니아 민속 선율을 토대로 작곡된 <루마니아 협주곡>(1951)에서도 등장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한 작가의 생애를 기술할 때 그가 숨 쉬었던 모든 순간들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순간들을 주목하는가에 따라 그 작가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들로 계열화하고 배치하느냐에 따라 리게티의 음악 세계 또한 아주 다양한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잘 알려진 대표작들 외에 여기저기 숨어있는 작품들을 찾아 함께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 되지 않을까. 이때 관악오중주를 위한 <여섯 개의 바가텔>(1953),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1962), <피아노 에튀드> 1~3권(1985-2001), <비올라 소나타>(1991-94)는 빼 먹지 말자.

󰡔객석󰡕 2007년 3월호, 106~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