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내악단의 또 다른 도전, TIMF앙상블의 흔적과 비전」

* TIMF앙상블은 통영국제음악제(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의 홍보대사 역할을 위해 결성된 연주단체로, 작곡가 최우정을 음악감독으로, 바이올리스트 정호진을 악장으로 하여 20여 명의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2001년 11월 통영국제음악제 D-100일 기념으로 창단 공연을 가진 후, 2007년 여름 현재까지 75회가 넘는 국내외 연주회를 통해 많은 현대 작품들과 한국 및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했다.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단체 집중 육성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3년간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최근 들어 다양한 영역에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앙상블 단체의 하나이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이들의 꿈과 비전을 들어보기 위해 마련된 이번 좌담은, 2007년 7월 5일(목) 통영국제음악제의 여름아카데미가 진행되던 통영 마리나 리조트에서 오후 5시부터 약 2시간 가량 이루어졌다.

참석자:
김승근 (통영국제음악제 이사)
최우정 (TIMF앙상블 음악감독, 작곡)
정호진 (TIMF앙상블 악장, 바이올린)
이혜원 (TIMF앙상블 단원, 바이올린)
오주은 (TIMF앙상블 단원, 첼로)
김소현 (TIMF앙상블 총괄 매니저)

사회 및 정리: 이희경 (음악학)

사회자: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좌담을 준비하면서 지난 5~6년간 TIMF앙상블의 활동을 살펴봤더니 정말 주목할 만한 일들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국내 연주뿐 아니라 다름슈타트 하기국제음악제, 아시아작곡가연맹(ACL) 페스티벌, 바르샤바 가을 음악축제, 스페인 아르코 아트 페어, 북경 현대음악제 등 해외 연주도 많이 했고, 앙상블 모데른, 하인츠 홀리거, 스티브 라이히 등과의 공동 작업 외에, 리게티 프로젝트, 베리오 추모 콘서트, 카겔 프로젝트, 슈니트케 프로젝트 등 현대 작곡가 한 사람을 집중 조명하는 음악회나 피아니스트 장형준과의 공동 무대, 이강율의 ‘Rainy Day’ 콘서트 등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Rainy Day’ 공연은 200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받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TIMF앙상블은 한국 및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즐겨 연주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는데요. 무엇보다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 무척 고무적입니다. 작년에는 한국 작곡가의 작품으로 미국 순회공연도 가졌고요. 최근에는 국립 오페라단의 베르크 <보체크> 국내 초연 무대에서 음악을 맡기도 했고, R.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펼쳐 오셨는데, 지난 5~6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TIMF앙상블이 갖는 고유한 특징 혹은 색깔을 말한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물론 계속 변화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TIMF앙상블의 출발, 그리고 진화

최우정: TIMF앙상블은 음악에 열심히 집중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 모든 게 정확하고 힘을 써야 될 때 쓰고 음악을 좀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연주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단체죠.

김승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단체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모델이 정확히 있었다기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음악 단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예전부터 최우정 선생과 그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는데, 통영국제음악제가 시작되면서 구체화된 겁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2002년 시작되었는데, TIMF앙상블은 2001년 11월 28일에 D-100일 연주로 첫 스타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그다지 큰 목표를 잡지 않고 시작했어요. 큰 가치와 목표를 두고 시작했다가 다 이루지도 못하고 점점 활동이 줄면서 없어지는 단체도 있는데, TIMF앙상블은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출발했고, 활동을 해 나가면서 조금씩 진화를 해 온 것 같아요.

정호진: 처음엔 창작음악이나 현대음악만 하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요.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 시대의 음악이나 창작곡을 많이 연주하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저 자신도 그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면서 연주한 경험은 많지 않았는데, 이 단체를 통해 악보도 접하고 준비 작업을 많이 한 게 좋은 결과를 낳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그러면 시작을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의기투합한 건가요?

최우정: 의기투합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고요, 김승근 선생님이 하자고 해서 한 거예요. (일동 웃음)

김승근: 사실 의기투합은 안 됐고요. (일동 웃음) 통영국제음악제가 중요한 계기가 된 거죠. 지금까지도 TIMF앙상블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고요. 사실 저도 이 자리에 통영국제음악제의 관계자로 참석하고 있는 거고요. 통영국제음악제의 여러 사업 중에 홍보단 운영이 있었어요. 물론 TIMF앙상블이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았지만 홍보단체 운영이 필요했죠. 요즘은 모든 게 인터넷으로 홍보되는 시대인지라 통영국제음악제도 이니셜 약자인 TIMF라는 이름이 브랜드가 되는 건데, 저는 TIMF앙상블 덕분에 통영국제음악제가 훨씬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번에 <보체크> 공연할 때에도 TIMF라는 이름이 나가면 통영국제음악제의 행사가 아닐지라도 그 이름을 통해 홍보가 되는 거니까요.

사회자: TIMF앙상블은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단체 같은 역할로 존재하는 건데요. 그게 앙상블의 활동에 장점일 수도 있지만, 혹시 제약 같은 건 없나요?

최우정: 제약은 없는데요.

사회자: 그럼 상주 단체로서 앙상블이 갖는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김승근: 제가 먼저 얘기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처음에 TIMF앙상블은 음악제의 제일 앞에 나서는 팀이 아니고, 일종의 서포터즈 같은 것이었어요. 음악제의 전면에서 멋있게 등장하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받쳐 주는 역할이었던 거죠. 한국에 현대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채워 준 거예요. 그래서 아주 어렵고 묵직한 곡들을 많이 했어요. 2004년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연주했을 때는 열 한 곡 중 아홉 곡이 완전히 신곡이었고, 작곡가도 다 달랐어요. 연주자들이 많이 해 오던 익숙한 곡들이 아니라 무척 힘들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런 점이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죠.

정호진: 사실 외국 음악제에 참석하면서 지정곡이 나올 때에는 많이 힘들긴 했어요. 바카우 음악제나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선 지정곡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우리를 시험해 본 게 아닌가 싶어요. 다름슈타트에서 연습할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미팅하고 8시에 밥 먹고, 9시 정도에 리허설 시작하면 저녁 11시에 끝났거든요. 밥만 먹고 정말 연습만 하면서 그 지정곡들을 다 해냈는데 평이 굉장히 좋았어요. 우리가 쏟은 열정에 결실이 있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그 음악제를 통과했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연주가 태동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제 참여는 제약이었다기보다 훈련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통영국제음악제가 있음으로 해서, 표현이 바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비빌 언덕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설령 우리가 연주할 곳이 없어진다 해도 통영에서는 연주할 수 있잖아요. 윤이상 선생님을 통해 세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도 자랑스러운 면이 있고요. 이제 외국에서도 통영은 윤이상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큰 버팀목이 되는 거죠. 만약 뜬금없이 ‘최우정과 그의 악단’ 이랬다면 연주는 하지만 뭔가 불안한 면도 있잖아요. (일동 웃음). 아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혹시 최우정이 안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의 악단’만 되는데 ‘그’가 또 누가 될지 모르는 거구요. 하지만 통영국제음악제는 지진이 나서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계속될 거고, 우리도 이 앙상블을 후세대에게 자랑스럽게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통영이라는 도시와 윤이상이라는 작곡가와 우리 앙상블이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고, 그런 점에서 상주 단체라는 건 아주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우정: 누구 하나가 주인이 되는 게 아닌 거죠.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경우는 기돈 크레머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TIMF앙상블의 경우는 제가 없어도 되고, 김승근 선생이 없어도 되고, 심지어 악장이 없어도 돌아갈 것 같아요.

정호진: 사심이 없이 뭉친 거죠. (웃음) 아니, 실은 노후에 여기 와서 베이스를 하고 싶긴 해요. 제가 베이스 연주하는 게 꿈이거든요.

최우정: 김승근 선생은 진짜 사심 있어요. 나중에 지휘할 거라고……. (일동 웃음)

김승근: 그건 80세가 되면 딱 한 번만 할 거예요. 프로그램도 다 짜 놨어요. (일동 자지러짐) 처음 앙상블을 구성할 때 사실 저는 정호진 선생이나 다른 분들은 잘 몰랐어요. 그 부분은 최우정 선생이 맡으셨죠. 제가 처음에 최우정 선생을 지휘자로 모셔온 이유는 우리 앙상블의 경우 지휘자로서 음악을 끌어주는 기능보다는 연습을 시켜주고 앙상블을 음악적으로 받쳐주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저희는 굉장히 다른 여러 종류의 프로젝트들을 하는데, 최 선생이 앞에서 리드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거든요. 예컨대 스티브 라이히 프로젝트를 할 때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최 선생은 아주 유연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 주고 계세요. 그리고 전체적인 악단 구성이나 음악적인 문제는 최우정 선생이 일임하고, 저는 재정이나 그 밖의 문제를 맡아요.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음악적인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일종의 역할 분담이 된 거죠. 제가 음악제 프로그램에는 관여를 해도 앙상블 프로그램은 최 선생이 알아서 하세요. 심지어 앙상블이 통영음악제에 와서 공연을 할 때에도 프로그램의 한 파트 정도만 음악제 쪽에서 의견을 내고 조정하는 정도니까요.

사회자: 스태프와 음악가가 아주 행복하게 분리된 팀이네요.

김승근: 네. 그건 저희가 아주 선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의사 결정 구조도 그렇고요. 사실 우리나라의 악단 구조가 한 사람이 모든 걸 책임지는 형태거든요. 아마 지금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사이먼 래틀이 다 책임지지는 않거든요. 사이먼 래틀과 동급으로 행정적인 책임을 지는 단장(Intendant)이 있잖아요. 사실 제가 앙상블의 행정적, 재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긴 한데, 저희의 경우 ‘단장’이라는 건 없고, 그 기능만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통영음악제가 그 기능을 해 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이후에는 김소현 총괄 매니저가 그 역할을 맡게 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제 디테일한 것은 관여를 안 하려고 해요. 단원들은 음악적으로만 결합하는 거고, 의사 결정은 네 명(저, 매니저, 음악감독, 악장)이서 같이 해요. 지금은 김소현 매니저가 좀 더 트레이닝하시는 기간이지만, 올해 안으로 제가 했던 일을 김소현 매니저가 모두 맡게 되실 거예요.

사회자: 그동안 앙상블을 해 오면서 음악적으로도 성장을 했지만, 운영이나 기획 같은 것도 굉장히 진화를 한 거네요.

정호진: 사실 저희한테는 그게 가장 큰 힘이에요. 앙상블을 하다 보면 신경 쓸 일이 굉장히 많은데, 저희 같은 경우는 음악적인 발전보다 기획 쪽의 발전이 훨씬 많이 되었기 때문에,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다른 신경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표를 팔거나 할 필요도 없고, 정해진 장소에 가서 열심히 연습해서 공연만 하면 되니까요. 저희가 다른 단체와 확실히 구분되는 장점이 매니저와 운영인 것 같아요.

최우정: 음악의 내용이라든지 무엇을 연주하느냐보다 어떻게 연주하느냐가 훨씬 중요하거든요. 레퍼토리가 뭔지도 중요하지만 그 레퍼토리가 담긴 전체 연주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중요한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각 곡을 잘 전달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왔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음악만 하는 거죠. 그런데 그 음악이 담길 그릇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거든요. 그게 스태프나 매니지먼트에 해당되는 일인데, 그 부분이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발전이 안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분들의 얘기라 50% 정도밖에 못 믿겠지만, 저희 게스트로 연주를 하셨던 분들이 저희 앙상블이 음악적으로도 그렇지만 매니지먼트와 조직적인 작업 과정이 좋다는 얘기들을 많이 해요.

김승근: 한국이라는 나라가 음악적으로 굉장히 수준이 높잖아요. 단순 데이터만으로는 잘 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이상하게 뭉쳐놓으면 그렇지가 못해요. 왜 그럴까? 그걸 타파할 방법을 뭘까?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첫째, 음악을 잘 해야죠. 그러려면 각 파트별로 음악적으로 책임져 줄 사람이 필요해요. 또 연주를 아무리 잘 하시더라도 저희와 성격이 잘 맞아야 되는 거구요. 성격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현대음악을 싫어한다거나 그런 분들은 안 맞겠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음악적인 것을 만들어 가구요. 그 외에 그걸 어떻게 마케팅 면에서 잘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요해요. 저희는 1년에 50%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저희가 만든 게 많았다면 이제는 불러주는 게 그만큼 많아요. 그래서 들어오는 일 중 꼭 할 것만 선별해도 옛날만큼 일이 많더라고요. 저도 일하면서 그 속도에 놀랄 정도예요. 예전에는 바위를 몰고 산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바위가 밑으로 내려가는 데 가속도가 붙어 너무 빨리 가니까 제가 쫓아가기가 너무 힘이 들 정도예요. 하지만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늘 진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고정된 상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트렌드가 뭔지를 찾아 가고 있어요. 예컨대 슈베르트를 연주하더라도 과거의 슈베르트가 오늘날 어떻게 보이는가에 관심을 갖는 거죠. 그런 것들이 변화의 가능성을 지닌 것이고, 그래서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TIMF앙상블의 레퍼토리

사회자: 지난 6년간 TIMF앙상블이 해온 레퍼토리를 돌이켜보면 어떤 흐름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주시고, 레퍼토리 선정은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씀해 주세요.

최우정: 윤이상과 한국 혹은 아시아 창작음악을 밖에다 소개하는 것, 현대음악의 고전 및 최신 경향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것을 위주로 짜다가, 지금은 어떤 방향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예를 들면 클래식, 낭만음악, 현대음악, 영화음악 등으로 확산되었어요. 어떤 길을 가는 게 아니라 부채꼴로 확 퍼진 느낌이에요.

사회자: 혹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최우정: 계기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연주를 자꾸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개인적인 바람이 많이 들어간 건데요, (김승근 선생이 그런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저는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나 방향을 정하는 것 자체가 작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프로그램 구성이 잘 되어야지만 그 곡이 빛이 나는 것이니까요. 아무래도 제가 여러 필드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도저히 현대음악만 해 가지고는 안 되겠는 거예요. 우리가 일단 괴로운데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 현대음악도 재미있게 즐기듯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레퍼토리 선정에 한 가지 키워드는 재미, 엔터테인이라 할 수 있어요. 현대음악을 어떻게 엔터테인할 것인가. 그래서 현대음악 프로그램을 짤 때도 될 수 있으면 재밌게 만들어서 각 곡을 잘 전달시키려고 했어요. 음악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해 보려고 정보도 많이 모으고 연주 형태을 바꿔 보기도 하구요. 어떻게 보면 지금 구체적인 방향은 없어요. 단지 21세기의 어떤 연주 단체가 자본주의적인, 상업화된 사회에서 자리매김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재미를 줘야 된다는 거거든요. 그 재미를 주기 위한 여러 가지 방향을 찾고 있는 과정이지, 어떤 방향을 딱 잡고 대중적으로 나가고 있는 건 아니에요.

김승근: 어떻게 보면 너무 확실하게 한 방향으로 가다가 그 방향이, 그 시장이 굉장히 어려워질 수도 있잖아요. 한국 창작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만 한다면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요. 너무 한쪽으로만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하는 건 아니고, 예컨대 영화음악을 한다 할 때도 그쪽의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대음악도 마찬가지구요.

최우정: 현대 공연예술의 형식 자체가 너무 세분화되고 진화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발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래야 된다고 먼저 정해놓고 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태도는 없는 것 같아요.

사회자: 네. 연주자들께서는 레퍼토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주은: TIMF앙상블의 좋은 점은 레퍼토리를 많이 공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실 처음 정호진 선배에게 같이 하자고 얘기 들었을 때는 TIMF앙상블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물어본 첫 마디가 “리허설 많아?” 였잖아요. 괜찮을 거라고 해서 처음 악보를 받았는데, 그게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였어요. 그런데 악보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현대음악을 많이 해봤지만, 처음 악보 보기가 힘든 게 현대음악의 장점이자 단점이긴 하지만, 무척 고생을 하면서 악보를 봤어요. 그런데 첫 리허설에 와서 굉장히 놀랐어요. 리허설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나 진지한 거예요. 게다가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 와요. 그러다 보니 리허설에 임하는 태도가 같이 진지해져요. 사실 선후배 관계로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좀 껄끄럽잖아요. 그런데 완전히 터놓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분위기예요. 후배가 뭐라 해도 그 아이디어를 다 들어주고, 같이 대화를 해 가면서 음악을 만들어 간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발전할 수 있는 젊은 단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레퍼토리 공부도 많이 되었어요. 특히 윤이상 선생님 작품은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처음 한 <8중주곡>에서 지휘하셨던 뤼디거 본 선생님에게 진짜 많이 배웠어요.

김승근: 누구 얘기로는 이제 윤이상은 좋아지려고까지 한다는데요. (일동 웃음)

정호진: 저희한테는 이제 고전이 되었죠.

김소현: TIMF앙상블 단원은 자다 일어나서도 윤이상 한 곡은 연주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웃음)

사회자: 혹시 위촉곡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김승근: 예컨대 우리가 락헨만에게 위촉을 준다고 쳐요. 비용도 있고, 그 사람도 쓸 마음도 있고요. 그런데 그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락헨만의 작품을 아시아에서 초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위촉은 아시아 작곡가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통영국제음악제의 취지에서 볼 때도 아시아 작곡가를 발굴해 내는 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하구요. 베토벤 5번을 멋지게 연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여기서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아시아 작곡가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거죠. 물론 한국 작곡가들도 포함되고요. 위촉곡을 선정할 때 제일 많이 고려하는 것은 그 곡이 그 연주회에 잘 맞을 것인가 하는 성격이에요. 그리고 가능한 한 젊은 분들에게 기회를 많이 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 분들은 우리와 함께 연주하면서 발전될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사실 좀 민감한 부분이긴 한데요. 어떤 분들은 우리가 기성 작곡가를 너무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씀들을 하시거든요. 절대 그렇지는 않고요. 그 분들 작품을 연주할 기회가 주어지면 당연히 하죠.

최우정: 사실 강의도 많이 안하고 틀어박혀서 작곡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중에 곡은 정말 좋은데 연주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분들 작품을 누가 하겠어요? 저희가 해야죠. 그러다 보니 위촉 작곡가를 정할 때, 힘들게 작곡하지만 연주 기회가 적은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먼저 고려하게 돼요. 저희가 그런 분들에게 집중하다 보니,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왜 우리 작품은 안 해주나 말씀하시기보다, 저 사람들이 우리가 못하는 걸 하는구나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열심히 곡을 쓰는데 연주가 잘 안 되는 작곡가들을 제가 많이 찾아봤어요. 또 그런 사람들의 작품은 한 번 해서 좋은 게 아니고, 하다 보면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작품이 소개되었을 때 그 작품 하나로 그 작곡가가 다 평가돼요. 특히 가려진 작곡가들인 경우는요. 그러니까 진짜 작곡을 하면서 작곡가로 사는 분들의 작품을 저희가 열심히 연주해야죠. 이런 저희의 노력이 작곡계 전체로 넓게 보고 축하해 주는 분위기면 좋겠어요. 덧붙이자면 저는 학생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특히 작곡과 학생들에게 연주만큼 좋은 공부는 없거든요. 저는 그걸 못 가져서 굉장히 아쉬운 사람인데, 그래서 학생들은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해요. 그게 실질적인 작곡 레슨인 거죠. 프로그램 선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평소에 연주 기회를 많이 못 갖는 작곡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기준이라는 건 알아 주셨으면 해요.

사회자: 정말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김승근: 예를 들면 우리가 다름슈타트에 갔을 때 연주했던 김남국이라는 작곡가가 얼마 전에 귀국했어요. 그런데 들어오면 처음이 제일 황당하거든요. 그 친구가 다름슈타트에서 1등상 받은 곡이 아직 초연도 안 되었어요. 여기서 커넥션이 없으니까 아무도 관심이 없고 연주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는 앞으로 3~4년이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봐요. 그래서 베니스 비엔날레 갈 때도 위촉을 줬고, 통영음악제에서도 위촉을 했죠. 한 3년 정도는 집중적으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젊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거죠. 그 사람이 발전하면서 저희도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게 기성 음악인들의 입장에서는 뭔가 이상한 데서 작곡가를 찾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자: 물론 그 분들 입장에서는 불만스러운 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단체가 음악계에서 나름대로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후배들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이와 유사한, 하지만 다른 칼라의 앙상블들이 생겨날 수 있고요.

최우정: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김승근: 처음 최 선생하고 얘기할 때 최소한 아시아에서 최고가 될 게 아니면 하지 말자고 했었어요. 통영국제음악제나 TIMF앙상블이나 아무튼 아시아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특성화가 된 거라고 봐요. 현대음악으로 아시아에서는 당장 우리를 쫓아올 팀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쫓아와도 우리가 가만 있지 않고 계속 진화할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굉장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어떻게 보면 통영국제음악제는 중국의 돈 많은 도시에 바로 깨질 수 있어도, 그게 TIMF앙상블 덕분에 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자부심이 있어요. 저희가 앙상블 모데른보다 절대 못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단원들에 대한 관리도 잘해준다고 생각하구요.

아시아의 문화상품적 가치

사회자: TIMF앙상블이 외국 공연을 갈 때 아시아나 한국 작곡가 작품들을 가져가잖아요. 연주를 하는 입장에서 그 작품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이에 대한 외국 청중의 반응은 어떤가요?

오주은: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은 아시아적인 냄새가 나요. 저는 프랑기즈 알리-자데 곡이 아주 좋았어요. 청중의 반응도 굉장했고요. 흔히 우리가 들어 왔던 서양음악이 아니고 민족적인 색채가 있어서 굉장히 신선했던 것 같아요.

김승근: 아시아 작곡가로 특성화된 것은 2004년 다름슈타트 갈 때부터였어요. 그 때 공연을 두 개 했는데, 하나는 그쪽에서 거의 정해줬어요. 김남국의 위촉 초연곡, 윤이상의 작품, 한스 토말라라는 독일 작곡가 곡, 이스라엘 여성 작곡가 차이아 체르노빌의 작품 등은 그쪽에서 정해 준 거였는데, 아주 도전적이긴 했지만 굉장히 잘 해냈어요. 토말라 작품은 그 때 1등상을 받았고요. 그거 말고 나머지 한 공연은, 어떻게 보면 다름슈타트하고는 너무 안 맞는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베트남 작곡가의 파곳 독주곡, 최우정 선생 작품, 중국 작곡가의 작품 등을 했는데, 그게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된 거였거든요. 사실 아시아 연주 단체가 아시아 작품을 갖고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독주자들은 몇몇 있지만 단체는 별로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상대적인 이점이 있고요. 단순히 이국적인 차원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아시아를 소개하는 단체로 알려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때로는 편성 자체도 그쪽에서 원하는 게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번에 베니스 갈 때는 가야금 하는 사람이 같이 가요. 웬만해선 외국에서 아시아 단체를 안 부르는 이유가 자기들이 그냥 악보 보고 하면 되기 때문인데, 우리는 그 부분을 점점 전문화시켜 가는 거죠. 다른 데서 후원을 좀 받아서 최소한 비행기 표만 알아서 해가면 그 사람들이 우리를 초청 안 할 이유가 없어요. 점점 더 아시아적인 경향은 강화될 거고, 태국이나 베트남 작곡가들을 더 발굴하면 그게 결국 우리한테는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봐요.

사회자: 새로운 아시아 작곡가를 발굴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겠는데요. 그에 관한 안테나를 계속 세우고 있어야 되고요. 어떻게 그걸 다 하나요?

김승근: 음악감독께서 워낙 많이 하시지만, 그 기능을 위해 따로 부서를 뒀어요. 리서치만 하는 거죠. 예컨대 우리가 셀시 프로젝트를 한다 하면 그 사람들이 조사 분석을 다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놔요. 그럼 김소현 매니저나 제가 그걸 팔러 다니는 거죠. 또 거기서 아시아 작곡가들에 대한 정보를 걸러서 최우정 선생한테 가지고 오면 그걸 가지고 최 선생이 요리를 해요.

최우정: 김승근 선생이 놀랄 정도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어요. 유럽 유학 시절부터 워낙 보고 들으며 배운 게 많다 보니, 제가 레퍼토리 쪽을 담당하지만, 저한테 정보를 주는 건 오히려 김승근 선생이에요. 저는 정보를 모으는 기능보다는 편집하고 구성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그래머나 매니저를 키우기 위해 사람들을 많이 배우러 보내요. 여러 군데에서 끊임없이 계속 정보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 모인 재료들은 지금 무지 많이 쌓인 상태예요. 남은 건 그걸 어떻게 제대로 구성하는가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제가 아주 일하기가 편해요.

사회자: 새로운 레퍼토리를 접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사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불만도 있지 않나요? 아시아 작곡가를 찾는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검증되지 않은 작품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 그러는 가운데 좋은 작품이 발굴되는 것이긴 하지만요.

오주은: 사실 캄보디아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 할 때는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시간도 얼마 없었던 데다, 좀 버거운 작품이었거든요. 하지만 책임감 때문에 해야만 했죠. 두 달은 연습을 해야 되는데 1주일 연습해서 무대에 올라야 하면 정말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도 현대음악 하면서 공부는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사회자: 이렇게 집중적으로 현대 곡, 그것도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김승근: 연주자들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악보와 관련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위촉곡이 안 나올 때는 정말 죽을 맛이죠. 그러면 연주자들이 무척 힘들어지거든요. 그리고 초창기에는 악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아주 많았어요. 주문하는 방법을 제대로 모른 경우도 있었고, 주문을 했는데 배송이 너무 늦게 된다든지, 아니면 곡을 들어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주문해서 악보를 보니 너무 어려워 연주가 힘든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는데, 초창기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죠. 오늘 피아니스트 임수연 선생님이 계셨으면 그 얘기를 했을 텐데, 카겔의 <바리에테>가 그런 경우였거든요. 음반으로 들었을 때는 할 만하다 싶었는데 악보를 받고 보니 50분짜리라 분량도 엄청 많고 너무 어려운 거예요. 워낙 연습을 많이 하시는 분인데 시간은 많지 않고 하니 거의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느낌이었죠. 결국 임수연 씨가 울면서 (일동 웃음)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집 앞까지 찾아가서 설득을 했어요. 오주은 선생님의 캄보디아 작곡가 경우도 사실 사정이 있었는데요. 원래는 색소폰 곡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악기 음역에 문제가 있어서 갑자기 못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첼로 독주곡으로 바뀌는 바람에 1주일 만에 연주를 해야만 했던 거죠.

오주은: 그래서 제가 너무 고민이 되어 가지고 임수연 선생님께 의논을 드렸는데, 김승근 선생님하고 싸워서 이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일동 웃음)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냥 했죠.

김승근: 그래서 제가 저녁 많이 사드렸잖아요! (일동 웃음) 저희가 악보에 관해서 경험이 너무 없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악보 구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일단 출판사 쪽에서 우리가 누군지를 모르는 거예요. 워낙 비싼 악보들이다 보니까 악보 대여를 그렇게 오래 해주지도 않고요. 저작권 때문에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앙상블의 음악적 팀워크와 운영 방식

사회자: 앙상블의 고정 멤버가 한 22명 정도(현악이 열, 관악이 여덟, 타악기 둘, 피아노 둘) 되던데요. 이 분들이 항상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객원을 많이 쓰시잖아요. 그러면 앙상블의 고유한 소리를 만들어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그런 것 자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최우정: 저희에게 앙상블의 고유한 소리는 안 중요합니다. 그건 고급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환상인 것 같아요. 여러 연주 단체와 차별되는 색깔, 예컨대 우리가 잘 아는 베를린 필 같은 소리, 우리는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지, 미학을 만들려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음악감독으로서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앙상블의 고유한 소리는 없습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거죠.

사회자: 네. 하지만 연주자 입장에서는 약간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앙상블의 고유한 음색을 만든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연주를 하다 보면 연주자들끼리 음악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객원을 쓰고 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악장 입장에서는 그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호진: 소규모로 할 때는 거의 다 멤버가 하거나 기껏해야 한 명 정도 객원이 포함되니 별 문제가 없어요. 저희 내부 원칙이 사중주곡을 하면 두 명은 멤버가 들어간다는 건데, 그러면 저희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물론 저희에게 특별한 소리라는 건 음악감독님 말씀처럼 카멜레온 같은 거예요. 하지만 저희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생각은 있거든요. 현대음악을 고전처럼 연주하고, 고전음악은 현대음악처럼 접근하려는 그런 생각 말이죠. 현대음악=나쁜 소리가 아니라 현대음악을 가장 좋은 소리로 만들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판타지를 가진 두 사람이 들어가면, 그 연주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단원이 들어가도 객원과 함께 충분히 그런 작업은 해 내요. 저희 멤버들이 6년 가까이 훈련을 해 왔기 때문에. 저 자신도 그렇고, 새로 들어온 영입 단원도 뒤에 앉아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각자가 책임 있게 연주를 하는 거죠. 소규모 때는 문제가 안 되는데, 이번에 <보체크> 공연처럼 대규모일 때는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다행히 앞의 몇 분과 관악은 모두 저희 멤버였지만, 반 이상이 아니잖아요. 과연 이게 굴러갈까 걱정이 많이 됐죠. 처음에 소리를 내 보면 일단 준비 상황이 너무 달라요. 악보를 보는 관점이나 방식도 그렇고, 저희는 많이 했으니 기호가 어떻게 되는지 다 간파가 되잖아요. 그런데 뒤에서는 악보만 달랑 그냥 들고 온 사람이 많았어요. 심지어 안 가지고 와서 찾는 사람도 있었고요. (일동 웃음). 그러면 앞에서는 끓죠. 첫 시간에 일단 이건 이렇게 된다 하는 견적을 내요. 첫 리허설 끝나고 집에 갔는데 속이 뒤틀리더라고요. 이렇게 해서는 초연이고 뭐고 할 수가 없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하는데, 틈나는 대로 우리화 시켜가는 방법밖에 없는 거죠. 물론 정해진 연습 시간 안에 해야 되지만, 결국에는 그 분들이 모두 잘 해주셨어요. 모든 파트의 선생님들이 자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알아서 정돈이 되고, 지휘자도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고요. 우리도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그 사람들을 끌어서 할 수 있게 된 거죠. 한편으로는 일정 부분 포기가 된 면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위해 좋은 연주를 해 주러 오셨으니 다독거리며 해 나가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이번에 <보체크>를 끝내고 보니까, 이제는 덩치를 불리는 것에 대해 겁이 많이 없어졌어요. 매번 우리가 하고 싶은 트리오나 콰르텟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대가 요구하는 게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변신, 합체가 자유자재로 되는 그런 단체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김승근: 그래서 단체의 메인 프로젝트 외에 내부에 소규모 앙상블 팀들을 구성하려고 해요. 클라리넷 이용근, 비올라 강주이, 피아노 임수연, 이 세 분이 임준희 선생 작품을 한 번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함께 연습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즐거웠대요. 그래서 자주 만나 연습하면서 레퍼토리를 만들어 가시는 거죠. 그 세 분이 어디 고정된 직장이 있으신 건 아니거든요. 저희가 고정적으로 못 끌고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오케스트라에 계신 분들이 있다 보니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연주를 하고 싶어도 일정이 안 맞아서 못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소그룹을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레퍼토리를 쌓아 가면, 그런 세부 팀들이 TIMF앙상블의 공연으로 갈 수도 있는 거죠. TIMF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되는 거예요.

사회자: 초기부터 함께 하신 단원들도 있고, 이후 들어오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이번 <보체크>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단원들 사이에서 음악적인 공감대나 팀워크 같은 게 있어야 흔들리지 않고 잘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멤버십은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지요? 그냥 연주를 하면서 생기는 건가요?

정호진: 일부러 원칙을 세우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연습과 연주에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는 있는 것 같아요. 리허설 전에 미리 준비해 와야 되고, 시간 약속에서 늦지 않아야 되고, 연습 빠지면 안 되고 하는 이런 기본적인 건 반드시 지켜야 되는 거죠. 저희가 30대 초반에 시작하면서 후배들을 많이 섭외했기 때문에 아직 뒤로 기댈 나이가 아니잖아요. 저희 앞에 앉아 있을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구요. 항상 모였을 때 서로 긴장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단원 간에 단합 대회는 하지만 거리는 유지가 되고, 어떻게 보면 인간적인 신뢰가 있어야 음악적인 교감도 되는 거구요. 상대를 신뢰할 수 없는데 그 사람이 활을 어떻게 쓰자 하면 의견을 따르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누가 음악적인 의도로 얘기를 했으면 그걸 존중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편이에요. 저는 오늘 활을 위에서 쓰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아래에서 쓰겠다 하면 그럴 수 있는 거고요. 그렇게 해서도 같은 소리를 내 주면 되는 거니까요. 그러한 토론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멤버 간에 확실한 음악적인 교감이 되는 것 같아요.

최우정: 오늘 앙상블 아카데미 연습할 때에는 한 학생이 낸 의견에 선생님들이 바로 동의했잖아요.

김승근: 저희 단원들의 연령대가 70년 생 주변이 많고, 제일 어린 친구가 78년생인데요. 어리다고 선배들이 위압적으로 말하거나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에요. 보통은 나이든 사람이 이끌어 가는데 여기서는 누구나, 심지어 게스트들도 음악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거든요. 저는 바로 그러한 점이 저희 팀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오주은: 젊은 사람들이 신선한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만 있지 선배들 앞에서 내 놓지를 못하거든요. 어떤 한 사람이 이끌어 가는 앙상블인 경우에는 젊은 사람들이 음악이 어떻다고 자기 아이디어를 감히 얘기할 수가 없어요. TIMF는 자기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게 아주 좋아요.

최우정: 악장님이 엄격하시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계셔서 연습 분위기가 진지하고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주 열심히 하시고요.

사회자: 악장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자질을 갖고 계시네요. (웃음)

김승근: 요새는 악장님도 많이 바쁘셔서 모든 프로젝트에 참석은 못하시는데, 악장 없이 단원들이 게스트 몇 분모시고도 우리화 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30대에 시작을 했는데, 계속 젊은 피를 수혈해야 되고, 몸은 늙어가더라도 정신은 계속 젊음을 유지해야죠. 앞으로 100년, 200년 이어가는 단체가 되려면, 왜 모였는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그 정신을 다져나갈 필요가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저희더러 앞의 몇 명 빼 놓고는 학생 쓰는 거 아니냐는 얘기들을 했는데요. 저희는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랑 같이 했던 학생들 중 벌써 유학 갔다 돌아온 친구들이 있는데, 어떤 때는 그 친구들이 연주할 때에도 우리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저는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아카데미 같은 것을 잘 운영해서, 단지 TIMF앙상블의 미래 단원들을 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 와서 진지하게 토론하며 음악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건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원칙을 지키는 거예요. 사람들이 한국의 오케스트라가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보다 못하다는 걸 이해를 못하는데, 그건 아마도 이런 원칙들이 안 지켜지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저희가 그런 원칙을 잘 지켜가며 음악을 하면, 그런 문화가 젊은 세대에게 넘겨지는 것 아니겠어요?

앙상블의 미래와 비전

사회자: 그럼 마지막으로 TIMF앙상블의 미래에 대해 음악적인 측면, 기획적인 측면, 교육적인 측면에서 얘기를 해 보죠. 이왕이면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각자가 생각하는 비전이면 더 좋겠습니다.

김소현: 공식적인 비전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내년부터 저희 팀에서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요. 단원들의 계약과 관련해서, 금전적인 문제나 연습비 지불 같은 것들이 문서상으로 좀 더 정확하게 명시되고요, 정단원은 2년 계약제 시스템으로 갈 거예요. 그리고 2010년부터는 상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구속력 있는 계약을 시도할까 해요. 그리고 단체 입장에서는 올해 사단법인화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열심히 일을 해야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웃음) 그게 가장 큰 목표이에요.

사회자: 스태프가 김소현 총괄 매니저 말고 누가 더 있나요?

김승근: 김소현 매니저 외에는 재단 직원이라 보시면 돼요. 재단에서 운영과 장소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게 큰 버팀목이에요. 사단법인이 되면 김소현 매니저는 상임 이사가 되는 거고요. 앞으로는 프로젝트별로 매니저를 둬서 제가 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데려올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을 할 겁니다. 어쨌든 사이즈 자체가 커진다고 돈이 잘 벌리는 건 아니고, 지금은 그냥 잘 맞춰나가는 정도에요.

사회자: 어쨌든 재단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 재정으로 굴러가는 거죠?

김승근: 그럼요. 재단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음악제 기간 중에 받는 개런티, 직원 사무실, 인력 지원인데, 사실 인력 지원이 상당히 크죠. 앞으로는 연습실 확보도 해야 되고 할 일이 많아요. 김소현 매니저의 꿈이 주차장 완비된 연습실 확보거든요. (일동 웃음) 그런 게 비전이죠. 사실 김소현 매니저가 들어와서 굉장히 발전적으로 많은 일을 한 것 같아요. 저나 음악감독이나 연주자들이나 모두 파트타임이잖아요. 다른 일들도 하시니까요. 하지만 매니저는 풀타임이어야 하거든요. 매니저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 주시니까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거예요. 저는 김소현 매니저가 나간다고 할까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 얼마 전에 만나자고 해서 얼마나 겁이 났던지……. (일동 웃음)

최우정: 정말 얼마나 중요한 분인지 몰라요. 초반에는 연주자 연락, 의자 나르는 것 등을 다 우리가 했거든요. 그런 일을 하신다는 게 아니라, 말하자면 그때는 음악에 완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김승근: 이제 악보가 좀 보인대요. (일동 자지러짐) 다른 단체들이 참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 전문적이지 않은 영역의 일들을 함께 하기 때문일 거예요. 인쇄소 가고 그런 일들도 안 해보면 굉장히 힘든 거거든요.

오주은: 저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는데요. 제가 지금 30대인데, 40대, 50대에 계속 할 수는 없잖아요. 레슨을 하다 보면 정말 잘하는 제자들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을 TIMF에 심어 놓고 우리의 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승근: 그런 점에서 아카데미 기능을 계속 강화할 겁니다. 학생들하고 연주 한 번 잘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들이 전해지는 교육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대구 음악제나 태국 갈 때도 아카데미를 같이 하려고 해요.

사회자: 그런데 50, 60대까지 계속 연주를 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보로딘 사중주단 같은 경우 80대 노 음악가가 30대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던데요. 지금 단원들이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연주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만 나이가 들면 뒤로 물러나곤 하는데, 물론 그러면서 단체가 계속 젊어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30~40년 끌어 온 음악적인 아우라도 필요할 것 같아요.

김승근: 그 말씀에 기본적으로는 동의하는데요. 앙상블 모데른 같은 경우를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단원들이 다 같이 60대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다 보니 상당히 도전적으로 시작한 단체인데 요즘은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현대음악을 하면서도 안정적인 것만 찾는다는 거죠. 물론 이제 그 기능을 하는 다른 단체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지만요. 어떤 부분에서는 현재 연주자들이 계속 연주를 해야겠지만, 좋은 제자가 와서 같은 정신으로 하고 있으면 그게 또 우리인 거잖아요. 앞으로는 3명부터 40명까지 여러 팀들을 운영해서 TIMF앙상블의 브랜드 이름으로 나가려고 해요. 나중에 T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생기게 되면, 그것의 기본 주축도 TIMF앙상블이 될 거고요. 제 비전은, TIMF의 챔버 오케스트라 하나가 서울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트리오 팀 하나는 지방을 돌고 있고, 또 다른 한 팀은 외국에 가 있는 그런 거예요. 사실 이건 제가 하겠다는 게 아니고 현실적인 일정 때문에라도 그렇게 돼요. 이번 9월만 해도 일본 가는 팀, 베니스 가는 팀, 최우정 선생 음악극 하는 팀들이 다 다르거든요. 그 팀마다 책임자가 있고요. 저는 이런 상황이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머지않아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고정 레퍼토리들이 많이 생겨가지고 예전만큼 그렇게 힘들지는 않잖아요. 제 비전은 하루 저녁에 전 세계에서 세 팀의 TIMF앙상블이 연주하는 것, 그거예요.

이혜원: 저는 특별한 비전은 없고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매니저가 너무 좋고, 스태프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연주할 맛이 나요.

정호진: 우리나라가 음악하기가 참 힘든 상황인 건 다들 동감하실 거예요. 각자 피땀 흘려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막상 귀국해서 보면 현실이 너무 각박하거든요. 실적 때문에 자기 돈 들여서 독주회 해야 되고, 그거 안하면 강사를 못하니까요. 열심히 준비해서 독주회를 해도 청중이 제대로 오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꿈꿔 왔던 음악적인 것을 펼칠 수가 없는 게 참 힘들었어요. 뭐든 하나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되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고요. 처음 귀국해서는 꿈이 있지만, 좀 지나면 “이건 아니야.” 그러다가 1~2년 지나면 자신도 똑같이 그게 아니게 되거든요. 리사이틀 준비하면서 레퍼토리도 특별히 짜고 별의 별 노력을 다 해봤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리게티 <호른 트리오> 할 때에도 사실 굉장한 열정을 바쳐서 준비한 건데, “이런 걸 왜 해.” 그런 소리 듣고, 개런티도 제대로 못 받고 그래요.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의 비전은 이 단체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좋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우리도 상업적으로 팔려야 되는 거거든요. 언제까지 베토벤만 할 수는 없잖아요. 크로스오버도 상관없고 변신에 변신을 해서 우리를 찾아주는 데 가서 공부한 것을 보람 있게 써 먹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단체가 태동이 되어서 많은 단체들에게 자극이 되면 싶어요. 공연이라는 게 순수하게 음악적인 정성을 보여 줘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 단체를 통해 알려졌으면 좋겠고요. 사실 요즘은 많이들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회자: 저도 정말 그러길 바랍니다. TIMF앙상블의 출발이 “음악적인 기본을 제대로 하자”였듯이, 그것을 계속 지켜 나가면 그 정신이 한국 음악계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서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정호진: 그리고 세대교체와 관련해서는요. 사실 우리들 누구나 힘닿는 대로 계속 연주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우리가 꼭 앞에서 해야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물론 우리도 계속 발전해 나가야겠지만, 우리보다 뛰어날 수 있는 사람들을 옆에 혹은 앞에 세우면서 단체를 젊게 만들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걸 놓기가 힘든 건데, 후배들에게 멋지게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는 단원들이 관리를 잘 하셔서 함께 기량을 갈고 닦고 여러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죠. 사실 우리 아래 세대는 독주자 교육만 너무 받아서 앙상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부족해요. 그게 얼마나 귀한지를 잘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아카데미를 통해 그런 의식을 전해주고 싶은 거예요. 얼마 전에 <보체크>하는데 아는 사람이 와서 보고는 “너는 안 보인다. 불쌍하게.”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제가 안 보여도 상관이 없거든요. 밑에서 연주하는 게 값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학생들에게도 그런 생각이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아카데미는 얼마나 계속된 거예요?

김소현: 2005년에 시작되었고 격년제로 하고 있는데, 홀수 해에는 통영에서 실내악, 작곡, 앙상블 등 여러 가지를 하구요. 짝수 해에는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앙상블 아카데미를 열어요. 작년에는 전주에서 했었고, 내년에는 대구에서 해요. 그러니까 앙상블 아카데미는 거의 매년 하는 거죠.

사회자: 마지막 하시고 싶은 얘기로 마무리하죠.

김승근: 제가 자꾸 얘기를 하게 되는 이유가 초반에 관여한 일이 많아서 같아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내용이라기보다는 시스템에 관한 건데요. 제가 하던 기능은 이제 김소현 매니저가 하기 때문에 앙상블에서 제 역할은 줄어 가고 있고요. 내년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이 사단법인화 외에 예약제를 정착시키는 것이에요. 서울하고 수도권 관객을 대상으로 일 년에 다섯 개 정도를 봄 시즌에 파는 거죠. 지금은 한 번 준비해서 한 번 치르고 마는 차원이지만, 팬들을 좀 더 확보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연주한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공연된 후 다음 날 일본이나 싱가포르 정도에 같이 팔려갈 수 있는 걸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막심 벵게로프와의 공동 작업도 해 볼만 하다 싶어요. 그게 꿈이 아니라 목전에 다가온 일이거든요. 우리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만들 것인가가 문제예요. 홍콩 아트 페어나 상하이 페스티벌 같은 데 가려면 프로덕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아요.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묶어서 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거죠. 예컨대 다섯 번 공연을 보는데 학생들의 경우는 다 사면 가격을 저렴하게 해 주고 CD를 선물로 주는 식으로. 그리고 이전보다는 좀 더 중심부로 나갈 거예요.

최우정: 얼마 전에 알반 베르크 콰르텟 비디오를 보면서도 느낀 게 그 분들은 정말 연구를 많이 한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그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넓게 나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음악을 깊이, 그리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걸 끝까지 유지한다면, 세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TIMF앙상블은 계속 유지될 것이고, TIMF앙상블의 좋은 영향력도 지속될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가장 정상적인 음악 활동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도 재미있게 느끼게 될 것이고요. 앞으로 그런 식으로 즐겁게 공부하면서 음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오늘 좋은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박수)

* 좌담을 끝내고

지난 5~6년간 TIMF앙상블의 “진화”는 그들 말대로 정말 작은 데서 출발하여 기본을 다져 가며 쌓아 간 노력의 결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진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획력, 이른바 체계적인 조직화의 힘이었다고 보인다. 음악적 열정과 진지함에 더해 TIMF앙상블이 다른 어떤 앙상블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막강한 스태프의 존재였을 것이다. 앞으로 TIMF앙상블의 행보가 주목된다. 음악적으로뿐 아니라 이들이 앙상블을 꾸려나가는 조직력 면에서도.
김승근 이사가 강조하는 “아시아 최고”는 점점 성장해 가는 다른 앙상블에 의해 언젠가는 깨질 수도 있을 것이다. TIMF앙상블 하면 떠오르는 독자적인 컨셉(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TIMF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이야말로 이 단체가 보여줄 수 있는 비전이 아닐까 싶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7』(2007), 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