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 시작될 즈음 독일 신문 ‘디 벨트’에는 “독일인이 본 20세기 최고 예술가”의 순위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작가로는 카프카, 화가로는 피카소, 작곡가로는 스트라빈스키가 1위를 차지한 걸 보며, 스트라빈스키의 위상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로 2, 3위는 버르토크와 드뷔시였고,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곤 하는 쇤베르크는 11위에 머물렀다.] 그런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평전이 출판되었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작곡가는커녕, 모차르트, 베토벤, 말러 정도를 제외하곤 이른바 고전낭만 시대 작곡가에 대한 제대로 된 평전 하나 찾아보기 힘든 국내 음악출판의 현실에서, 번역서도 아니고 국내 필자가 집필한 현대 작곡가의 평전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쓴 『스트라빈스키. 현대음악의 차르』(을유문화사)는 한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일반적인 평전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생애와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폭넓게 아우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가 살았던 시대, 그와 함께 작업했던 동료 예술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트라빈스키라는 작곡가를 위치 지움으로써, 한 작곡가의 평전을 넘어, 그를 통해 20세기 문화예술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트라빈스키의 주 창작분야가 공동 작업이 필수적인 무대음악이었기에, 이러한 서술방식이 자연스럽게 요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수많은 이웃들의 존재는 이 책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고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맛깔스러운 조연들이다.
1882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고 2차 대전 중 미국으로 건너가 1971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트라빈스키는 평생 고향을 떠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했다.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한 스트라빈스키의 생의 여정을 따라, 주요 활동무대였던 러시아(1882~1914), 스위스(1914~1920), 프랑스(1920~1939), 미국(1939~ 1971)의 네 시기로 나뉜다. 전체 15장 중 그의 주 활동 무대였던 프랑스 시대에는 가장 많은 여섯 장이 포함되고, 1차 대전을 피해 잠시 머물렀던 스위스 시대는 두 장으로만 구성된다. 책의 내용은 시간순으로 진행되며, 시기별로 작곡된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각 장의 제목은, 작품명이 아닌 그 장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의 이름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무소르크스키에서 피카소, 드뷔시, 바흐, 베토벤, 콕토, 차이코프스키, 지드, 발란신을 거쳐 크래프트와 베베른에 이르기까지 이 작곡가의 삶의 여정과 창작 세계에 영향을 준 혹은 그의 예술적, 정신적 환경이 되었던 수많은 이웃들의 존재가 목차에서 이미 한눈에 그려진다. 이처럼 내용은 연대기적으로, 작품을 중심으로 전개해가면서, 관련된 인명을 제목으로 뽑은 것은 아주 신선한 설정이다. 게다가 인명 제목 아래 부제처럼 달린 인용문들도 무척 흥미롭다. 예컨대 1장 림스키코르사코프 “우리에겐 아직 글라주노프가 있잖아”, 6장 피카소와 마티스 “당신들은 그것을 ‘숭배’하나 나는 ‘사랑’한다”, 10장 차이콥스키 “자네가 없으면 러시아 발레단은 어찌 될까” 등의 문구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체 누가 어떤 맥락에서 했던 말일까. 각 장의 인명 제목과는 별개로 설정된 것이기에 본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지는 이 부제들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흥미로운 장치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대표작들에 대한 설명이 충실하다는 점이다. 어느 작곡가에게나 출세작은 있게 마련이지만, 스트라빈스키만큼 한 작품과 밀착된 작곡가도 드물다. 그가 쓴 많은 작품이 <봄의 제전>이라는 세기의 걸작에 가려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주요 작품 하나하나에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단순한 작품 해설이 아니라 그 작품이 어떤 배경에서 생겨났으며 그때 작곡가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는지를 생생한 에피소드를 통해 서술하고 있어, 작품을 그것이 탄생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폭넓게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스트라빈스키 작품 세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무대 음악들의 줄거리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1939년 하버드 대학에서 행한 강연 “음악의 시학”의 내용이 간략하게나마 소개되어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다. 이 강연 내용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관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추천 영상과 음반은 책을 읽은 후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직접 경험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자료이다. 특히 상세한 해설이 부가된 아홉 편의 추천 영상은 모두 골라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스트라빈스키라는 작곡가를 통해 20세기 음악사의 한 단면을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들을 흥미로운 현대음악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생각하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특이성은 무엇인지가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좋지만, 어차피 자료라는 것도 저자에 의해 선택되고 또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던가. 지금 한국에서 스트라빈스키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서술한 ‘에필로그’가 앞선 장들과 완전히 단절적으로 읽히는 것도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위대함 혹은 매력이 본문에 충분히 스며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책의 제목이 “스트라빈스키. 현대음악의 차르”인 것도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를 엿보게 한다. 단지 현대음악의 최고 황제라는 수식어보다는, 무엇이 그를 ‘차르’라고 부르게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그의 음악이 갖는 특이성을 포착하게 하는 제목이었더라면, 그렇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정준호라는 저자에 의해 재탄생된 스트라빈스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가 서술해도 비슷비슷한 내용의 평전보다는 저자 자신의 색깔이 묻어나는 평전이 훨씬 흥미롭게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 평전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생애 연보가 빠진 점이다. 한 예술가의 ‘생애’를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생애 연보는 그 예술가의 일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 역시 저자의 입장이 개입되게 마련이기에, 누가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뉘앙스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더더욱 생애 연보는 평전에 필수 요소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부정확한 명칭들과 오타가 눈에 띈다. 36쪽 <굴리엘모 텔>은 로시니의 <기욤 텔>을 잘못 표기한 것이리라. 흔히 영어식으로 <윌리엄 텔>이라 불리긴 하지만, 로시니가 파리에 온 후 프랑스어로 쓴 오페라이므로 원래 발음대로 한다면 <기욤 텔>로 불러야 할 것이다. 37쪽 “니콜라이의 오페레타 <즐거운 과부>”도 혼란을 불러일으키는데, 오토 니콜라이의 코믹 오페라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즐거운 과부>를 지칭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173쪽 아래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로 실내악을 쓴…”은 글의 문맥상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오타가 아닌가 싶다.
국내 저자들이 쓴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같은 시대, 같은 문화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저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연구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은, 외국에서 나온, 이미 ‘고전’이 된 평전들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작업이 더욱 많아졌으면 싶다. 열혈 음악애호가들과 직접 대면하는 음악칼럼니스트들만이 아니라 이른바 음악학자들도 독자들과 폭넓게 소통하는 책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저변을 넓히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는 성공한 듯하다. 책을 덮고 나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 듣고 싶어지니 말이다. 음악애호가들에게 만이 아니라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 현대예술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서평문화』 Vol.70, 2008년 여름호 (2008.06), 125~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