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콘론 낸캐로우. 존 케이지와 동년배이나 198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 작곡가. 스스로 선택한 고립과 은둔의 삶 속에서 수십 년간 오직 하나의 매체, 하나의 문제에 깊이 천착한 예술가. 그를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린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의 음악은 소문으로나 듣는 한갓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미국 실험음악의 대부였던 케이지는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 음악을 처음 세상에 소개했고, 죄르지 리게티는 “베베른과 아이브스 이후 최고의 발견이다”라는 열정적인 찬사와 함께 낸캐로우 음악의 독창성을 널리 전파했다.
멕시코로 망명한 미국 작곡가
1912년 미국의 아칸소주 택사캐나에서 태어난 낸캐로우는 피아노보다는 트럼펫에 매료되어 10대에 이미 밴드의 트럼펫 주자로 활동했다. 1930년 신시내티 콘서바토리에서 수학하고, 1934년 보스턴으로 가 로저 세션스에게 개인적으로 대위법을 배운 적이 있긴 하지만, 작곡은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재즈와 좌파 정치에 경도된 급진적인 청년 낸캐로우는 1937-39년 아브라함 링컨 여단 소속으로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내전에 참전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미국으로 돌아온 후 연방정부로부터 여권 발급을 거부당했다. 1940년 정치적 불이익을 피해 망명을 결심하고 당시 진보적인 정권이 있던 멕시코로 향했고, 그곳에 정착하여 1956년 멕시코 국적을 얻었으며, 1997년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낸캐로우가 자동피아노 음악에 몰두하게 된 데에는 헨리 코웰의 책 『신음악의 자원』(1930)이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살아있는 연주자로는 가능하지 않은 고도의 복잡한 흥미로운 리듬들이 자동피아노로는 쉽게 연주될 수 있다”는 코웰의 지적은 오래 전부터 복잡한 리듬에 관심이 많던 그에게, 더욱이 자신의 음악이 어려워 제대로 연주되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한 그에게, 자신이 상상하는 음악을 실현할 수 있는 돌파구라 여겨졌다. 1947년 부친이 남긴 유산을 받게 되자 곧바로 뉴욕으로 건너 가 자동피아노와 천공 기계(자동피아노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종이롤에 구멍을 뚫는 기계)를 구입한 후, 멕시코시티 근교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1948년부터 <자동피아노를 위한 스터디> 시리즈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1983년까지는 오직 이 하나의 악기만을 위해 곡을 썼으며, 1990년대까지 총 50여곡이 넘는 <스터디> 시리즈를 남겼다. 낸캐로우는 복잡한 리듬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다층적 텍스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구현하는 자동피아노 음악에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자동피아노의 화려한 부활, 재즈와 실험음악 사이
자동피아노는 본래 일종의 ‘재생장치’였다. 축음기가 보편화되기 이전 음악회에 가지 않고도 가정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 대두되었던 것이 자동피아노였고, 특히 1920년대 미국에서 엄청난 붐을 일으키며 대중화되었다. 낸캐로우 역시 자동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연주자 없이 기계작동에 의해 움직이는 이 새로운 악기는 작곡가들에게도 흥미로운 대상이어서, 1910/20년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파울 힌데미트, 알프레도 카셀라, 조지 앤타일, 마르셀 뒤상 등이 자동피아노를 위한 곡을 썼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호기심에 불과했고, 곧 이은 자동피아노의 쇠락과 함께 작곡가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1940년대 낸캐로우가 이 악기를 고물상과 피자가게에서 끄집어내어 거기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미 폐물이 된, 더구나 유흥을 위해 사용되던 이 악기를 실험적인 음악을 구현하는 최적의 매체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낸캐로우의 음악적 성장에 영향을 준 것들은 바흐와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재즈라 할 수 있다. 그가 신시내티에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처음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20세기 벽두 리듬 혁명을 일으킨 이 작품에서 그는 비박절적 형태로 해방된 리듬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층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만들어내는 복잡한 텍스처에 매료되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바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의 시작처럼 여겨지던 존재였다. <스터디> 시리즈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논들과 대위적인 작법들은 바흐의 <푸가의 기술>을 연상시킨다. 또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섭렵한 트럼펫 연주자였던 그에게 재즈는 음악적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부기우기 모음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스터디 3번>과 <스터디 45번>은 블루스, 래그타임, 재즈의 영향이 특히 두드러진 작품이지만, 다른 곡들에서도 재즈적인 느낌과 어법은 여기저기 녹아있다.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 음악은 2성부에서 많게는 10성부까지의 서로 다른 시간층이 동시에 진행되어 엄청나게 복잡한 텍스처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각 성부가 서로 다른 박자나 템포로 진행되는데, 이때 4:5:6:7 같은 정수 비례관계만이 아니라 무리수인 루트2:2와 같은 템포관계도 사용된다. 이처럼 복잡한 비례관계는 일반 피아니스트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동일한 선율이 약간씩 어긋나며 만들어내는 이 복잡한 성부관계야말로 자동피아노만의 고유한 장기 아니겠는가. 인간 연주자로서는 불가능한 엄청나게 빠른 템포 역시 낸캐로우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예컨대 <스터디 21번. 캐논 X>는 2성부 엄격 캐논으로 위 성부는 아주 빨리 시작해서 점점 느려지고, 아래 성부는 느리게 시작해서 빨리지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때 1초에 120개의 음이 나올 정도의 빠른 템포가 요구된다.
낸캐로우는 인간 연주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복잡한 리듬과 텍스처에 관심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음고 구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의 음악에서 음고까지 복잡했더라면 리듬의 복잡성, 변이되는 템포관계를 제대로 느낄 수 없지 않았을까. 그가 캐논을 즐겨 쓴 이유도 동일한 선율을 반복하게 되면 그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고 대신 성부들 간의 시간적 측면에 주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복잡한 리듬 구조를 투명하게 들리게 하기 위해 그는 자동피아노의 사운드를 하프시코드와 유사한 음색으로 변형시켰다. 피아노 해머에다 가죽 조각을 덧씌우고 금속 조각을 박았는데, 이러한 음색 변화를 통해 엄청나게 빠른 템포에도 많은 음들이 뒤섞이지 않고 다층적인 텍스처의 선들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 음악은 기계가 연주하는 것이나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매력이 있다. 또한 대부분 간결하지만, 엄청난 수의 음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음악의 밀도가 강하다는 말이다. 3분짜리 곡 안에 리스트의 25분짜리 소나타에 버금가는 음들이 들어있는가 하면, 5분 남짓한 <스터디 36번>는 악보가 무려 52페이지에 달한다.
복잡한 리듬과 텍스처, 다시 살아있는 연주자에게로
1980년대 낸캐로우의 자동피아노 음악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음악에 매료된 많은 음악가들이 라이브로 연주 가능한 신작을 그에게 위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동피아노 곡들보다는 덜 복잡하지만 여전히 서로 다른 박자와 템포로 움직이는, 엄청난 기교와 에너지를 요하는 작품들이 탄생했다. 캐나다 피아니스트 이바르 미카쇼프가 위촉한 <탱고?>는 3:4:5의 비례관계로 된 폴리템포곡이며, 아르디티 사중주단이 초연한 <현악사중주 3번> 역시 3:4:5:6의 템포캐논곡이다.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이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 같은 초기작들과 함께 <자동피아노를 위한 스터디>를 앙상블용으로 편곡한 작품들도 자주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 음악계는 낸캐로우의 존재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과할 정도로 20세기 미국 음악을 비중 있게 다룬 그라우트 음악사의 최신판에서도 낸캐로우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으니 말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작곡가. 주류 음악계의 흐름과 무관하게 스스로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한 낸캐로우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리게티의 열정적인 찬사처럼, 낸캐로우의 음악은 “너무나 독창적이면서 즐길 수 있는 음악이고, 완벽하게 구조화된 것이면서 동시에 감동을 주는” 것이기에, 제한된 연주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며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객석』 2008년 7월호, 9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