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F앙상블 10년의 발자취 ― 현대음악의 저변확대, 창작음악의 활성화」

TIMF앙상블에 대한 개인적 소회

2002년 5월쯤으로 기억된다. 네덜란드 뉴 앙상블(Nieuw Ensemble)이라는 단체가 1990년대 이후 중국 작곡가들의 작품만으로 꾸민 연주회를 보게 된 것이. 아시아 현대음악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무대였는데, 장한나가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했던 개막공연이나 진은숙의 바이올린협주곡이 아시아 초연되었던 폐막공연만큼이나, 내게는 이 공연이 큰 여운을 남겼다. 그들의 연주를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제 저런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국 작곡가, 나아가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고 전 세계에 연주를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한 기회에 최우정 교수와 얘기하던 중, 놀랍게도 이미 그런 앙상블이 만들어져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내가 TIMF앙상블을 알게 된 건 그렇게 막연히 꿈꾸던 미래가 곧바로 현실이 된 그런 감격에 찬 만남이었다.

이듬해 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TIMF앙상블의 연주를 처음 들었다. (아쉽게도 2001년 11월의 창단 연주나 2002년 연주회는 듣지 못했다.) 그곳에서 처음 접했던 하인츠 홀리거가 협연한 윤이상의 오보에 협주곡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물론 그 음악회는 앙상블 모데른을 비롯한 유럽 연주단체들과의 공동 연주였으나 TIMF앙상블의 이후 행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만큼 열정에 찬 모습이었다. 내게 TIMF앙상블은 현대음악 연주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음악계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현대 곡들을 수준 높은 연주로 들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 꽤 열심히 통영과 서울에서 (심지어 뉴욕에서도) 그들의 연주를 찾아 들었고, 가끔 기획공연에 해설자로 참여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연주활동을 지켜보았다. 몇 년간 TIMF앙상블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한국 실내악단의 새로운 도전으로 주목할 만했고, 그 성과와 의미를 짚어보고자 2007년 여름 아카데미가 열리던 통영까지 쫓아가 예술감독, 단원들 및 스태프와 함께 좌담을 연 바 있다. (그 좌담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7』에 실려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TIMF앙상블은 활동 범위나 규모 면에서 또 다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들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지난 10주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

10년의 족적과 의미

TIMF앙상블이 어떤 어려움과 진통을 겪으며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는지 외부인인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0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이들의 활동 이력을 살펴보며 주목할 만한 내용을 짚어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 연주 회수 면에서 보면, 2001년 11월 28일 “2002 통영국제음악제 D-100 연주회”로 첫 선을 보인 후, 2002년 3회, 2003년 5회, 2004년 9회에 불과하던 것이, 2005년과 2006년에는 각 16회, 2007년에는 25회를 상회하더니, 2008년과 2009년에는 각 32회, 작년에는 75회, 올해도 55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했다. 물론 이러한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수행해 온 연주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TIMF앙상블의 연혁에서 특징적인 것은 “통영국제음악제의 홍보대사 역할을 위해 결성된 연주단체”에서 출발하지만, 끊임없이 그 역할의 외연을 확대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첫 2-3년간 통영국제음악제 자체에 집중하면서, 음악제에 초청된 외국의 저명 연주단체 혹은 음악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외국 현대음악제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현대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는 음악회도 이때 이미 기획되었고, 윤이상 만이 아닌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도 조금씩 선보였다. 2005년경부터는 이런 다양한 활동들이 좀더 조직적으로 체계화되는데, 통영국제음악제 시즌 공연,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회, 해외 음악제 참가 및 투어 공연, 그리고 국내외 여러 단체 혹은 페스티벌의 초청 공연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2006년부터는 통영국제음악제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TIMF 앙상블 아카데미를 시작하여, 매년 국내외 저명 음악가들을 초청하여 차세대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강도 높은 워크숍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이러한 활발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7년부터 3년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집중육성단체로 선정되어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이 시기부터 TIMF앙상블은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 한국 작곡가 작품 연주라는 특화된 모습에서 벗어나, 클래식 고전 레퍼토리로 일반 청중들과 만나기도 하고, 오페라 공연의 반주나 영화 OST 녹음 등 전방위적 음악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외연의 확대와 함께 앙상블 본연의 고유한 역할은 상설적인 기획공연으로 더욱 내실을 기하는데, 매년 12월에 열리는 “한국 작곡가의 밤”을 비롯하여 젊은 작곡가들을 지원하는 작품발표회가 꾸준히 계속되고 있고, 현대 작곡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집중 조명하는 “작곡가 시리즈”, 매년 색다른 주제로 열리는 “LOFT-TIMF앙상블 워크숍콘서트”, 앙상블의 연주자들이 독주회 형태로 꾸미는 “TIMF앙상블 연주자 시리즈”, 그 밖에도 “솔로 플러스”, “믹스 앤 매치”, “호암아트홀 사통팔달(四通八達) 시리즈”, “C-Lab 시리즈” 등 다양한 기획으로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왔다. 또한 해외 공연에서는 한국 작곡가는 물론이고 아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프로그램으로 하여 아시아 현대음악 연주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TIMF앙상블의 저력은 무엇보다 탄탄한 조직력이 아닐까 한다. 국내 여타 앙상블이 갖기 힘든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과 기획력은 통영국제음악제의 지원으로 출범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들만의 독자적인 노하우를 축적해오며 만들어낸 성과일 터. 특히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활동을 적극 추진하면서, 아시아 현대음악 소개에 매진하는 것은 그들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급변하는 클래식 음악계의 지형 변화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함과 동시에 한국 음악문화 전체의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TIMF앙상블의 운영의 힘은 이들이 보여준 음악적인 비전만큼이나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닌가 한다.

TIMF앙상블은 지난 10년간 여러 측면에서 한국 음악계의 변화를 이끌어낸 견인차 역할을 했다. 획기적인 공연 아이디어와 프로그램 구성 면에서, 국내외 클래식 음악시장을 적극 개척해나가는 추진력 면에서, 전문 연주단체로서의 조직적 운영 면에서, 나아가 ‘현대음악’과 ‘통영’이라는 제한을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간 도전 정신에서, 여러모로 한국 음악계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한국 창작음악에 바친 열정

TIMF앙상블의 지난 활동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이 한국 창작음악 활성화에 바친 노력이다. 물론 현대음악의 저변확대에도 TIMF앙상블이 기여한 바는 무척 크다. 10년 전만 해도 현대음악 연주는 관련 페스티벌이나 작곡발표회 정도의 제한된 영역에서나 들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현대음악 연주단체를 표방한 실내악단들도 생겨나고, 국내 저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나 개인독주회에서도 현대음악 레퍼토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TIMF앙상블의 그간의 활동이 초석이 되었음은 분명한 일이다. 또한 여전히 TIMF앙상블만큼 다채롭게 현대음악 연주에 집중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음악계에서 더욱 기여한 바는 한국 창작음악, 특히 기성 작곡가들만이 아니라 젊은 작곡가들에게 보내는 관심과 지원이 아닐까 싶다. 활발하게 창작열을 불태우지만 발표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20-30대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꺼이 발판이 되어준다.

TIMF앙상블의 한국 창작음악 연주는 2005년부터 매년 12월 열린 “한국 작곡가의 밤” 시리즈는 물론이고, 기획공연이나 초청 공연 등에서도 빼놓지 않고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 창작음악 연주에 적극적이다 보니 다른 작곡단체나 페스티벌과의 공동작업도 많았고, 고정된 현대음악 연주회를 넘어 음악극이나 뮤지컬, 갤러리 공연에서도 자유롭게 창작곡들이 선보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작곡발표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TIMF앙상블이 연주한 한국 작곡가 레퍼토리를 보니 원로 작곡가에서 20대의 젊은 작곡가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른다(상대적으로 젊은 작곡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긴 했지만). 또한 기존 곡을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곡을 위촉함으로써 자신들의 창작 음악 레퍼토리를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TIMF앙상블에 의해 위촉 초연된 작품만 해도 40여 곡에 이르며, 그들의 연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초연 작 들 역시 30여 곡 이상이며, 한국 초연과 아시아 초연작들도 상당수다. 이들의 레퍼토리 보유현황(자료집 참조)에서 한국 작곡가 작품 106곡(윤이상의 21곡 포함)이 외국 작곡가 작품 143여곡과 함께 포함된 것만 봐도, 이들이 지난 10년간 한국 창작음악에 바친 열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TIMF앙상블이 한국 창작음악 연주에 주력하는 것은 통영국제음악제 상주단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2007년 좌담에서 김소현 팀장이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TIMF앙상블 단원은 자다 일어나서도 윤이상 한 곡은 연주해야 한다”는 건 괜한 얘기가 아닐 터. 윤이상 작품을 꾸준히 연주해온 몇 안 되는 연주단체의 하나가 TIMF앙상블이다. 하지만 윤이상의 존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그로부터 한국 작곡가, 나아가 아시아 작곡가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출발점이라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러한 인식 위에서 TIMF앙상블이 한국 및 아시아 작곡가들의 현재에 주목하고 그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방식의 접속과 만남으로 창작음악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시도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이제 TIMF앙상블은 한국 음악계의 영향력 있는 중견 단체가 되었다. 앙상블의 활동량과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조직 운영도 더욱 체계화되었고, 2008년에는 사단법인 체제로 거듭났다. 자체 기획 공연은 물론이고 수많은 초청공연, 해외 공연을 치르면서 자체 연주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객원 연주자들이 거쳐갔고, 아카데미를 통해 TIMF앙상블과 인연을 맺은 후학들도 많아졌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내적 결속력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을 터. 예술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연주자들이 앙상블을 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적 비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궁금하다.

지난 10년 간 TIMF앙상블은 놀랄 정도로 성장을 했고, 엄청난 동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약적인 성장 속에서 이들의 출발점, 작은 데서 시작하여 기본을 다져 가며 쌓아간 노력의 결실, 그 음악적 열정과 진지함이 자칫 묻힐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모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이야말로 앙상블의 살아있는 원동력 아니겠는가.

세상은 너무나 급변하고 있다. 19세기의 문화유산인 클래식 공연이 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조응할 수 있는지는 클래식 음악 관계자들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인터넷과 디지털로 재편성되는 글로벌 시대, TIMF앙상블의 비전은 어떤 것일지 기대를 갖고 지켜보게 된다. 바로 거기에 앙상블의 미래가 달려 있을 것이므로.

TIMF앙상블 창단10주년 기념페스티벌 심포지움 “한국 창작음악의 미래” 자료집 (2011.11.23),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