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
– ‘아르스 노바’ 진은숙, 현대음악을 ‘음악’으로 만들다
슈테판 드레스 엮음 / 이희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12년 10월 22일
목차
한국어판 서문 · 이희경
독일어판 서문 · 슈테판 드레스
프롤로그 · 켄트 나가노, 조지 벤저민, 정명훈 헌사
1부 삶이 음악으로, 음악이 삶으로
음악에 매료되어 호기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슈테판 드레스와의 대담
· 나의 스승, 죄르지 리게티를 위하여 -진은숙
· ‘혼재된 정체성’과 ‘언어유희’ -파트리크 한과의 대담
작곡에 관하여 – 슈테판 드레스와의 대담
· 아르놀트 쇤베르크상 수상 기념 연설 -진은숙
· 하이델베르크 예술상 수상 기념 감사의 말 -진은숙
작곡가로서의 삶과 한국 음악계에 대하여 -이희경과의 대담
유럽 음악계가 주목한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 -프랑크 하더스-부테노우
·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 작곡가 활동에 대한 생각 -진은숙
2부 시간의 거울, 진은숙의 작품세계
1. 인성에 대한 관심:성악 작품
세 명의 여성 독창과 여성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트로이의 여인들」 -슈테판 드레스
소프라노와 앙상블을 위한 동화의 일곱 장면 「말의 유희」 -진은숙
독창자들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간의 거울」 -프랑크 하더스-부테노우
「시간의 거울」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이 한데 뒤얽힌 상징적 이미지 -하바쿡 트라버
소프라노와 베이스 독창, 혼성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칼라」 -진은숙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내그스 앤 스널스」 -마리스 고토니
두 명의 소프라노, 카운터테너와 앙상블을 위한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 -진은숙
2. 비르투오소를 향한 열정 :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하바쿡 트라버
피아노, 타악기와 앙상블을 위한 「이중 협주곡」 -진은숙
「첼로 협주곡」 -하바쿡 트라버
「첼로 협주곡」, 머리에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라 -외르크 쾨니히스도르프
「생황 협주곡 ‘슈’」 -마리스 고토니
「생황 협주곡 ‘슈’」 -하바쿡 트라버
「첼로 협주곡」과 「생황 협주곡」에 대하여 -데이비드 앨런비와의 대담
3. 악기 소리의 무한한 상상력 : 독주곡, 실내악곡, 관현악곡
다섯 연주자를 위한 「기계적 환상곡」 -진은숙
환상의 메커니즘 -외르크 쾨니히스도르프와의 대담
「피아노 연습곡」 -진은숙
「피아노 연습곡」, 비르투오소함과 구성 -마르틴 빌케닝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카나」 -진은숙
「로카나」, 빛-소리-거울-공간 -하바쿡 트라버
앙상블을 위한 「구갈론-거리극의 장면들」 -진은숙
「코스미기믹스-일곱 악기 주자를 위한 음악 무언극」 -진은숙
4. 전자 음악의 향연: 전자음악, 라이브 일렉트로닉 음악
테이프음악 「영원에의 길」 -진은숙
테이프음악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타악기와 테이프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진은숙
타악기와 테이프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하바쿡 트라버
현악사중주와 테이프를 위한 「파라메타스트링」 진은숙
「파라메타스트링」, 현악기 음향의 내면을 비추다 -진은숙
앙상블과 전자 음향을 위한 「씨」 -프랑크 하더스-부테노우
바이올린과 라이브 일렉트로닉을 위한 「이중구속?」 -진은숙
5. 꿈과 환상의 세계: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극장장 크리스토프 알브레히트에게 보낸 편지 -진은숙
·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연에 즈음하여 -데이비드 앨런비와의 대담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생각의 단편들 -켄트 나가노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음악적 약호와 구조 -바바라 추버
3부 진은숙 음악 읽기
진은숙 음악, 소리와 색채의 매혹적인 조화 -폴 그리피스
질서, 카오스, 컴퓨터-진은숙의 음악 여정 -한노 에를러
오로지 자신의 판타지에 의존하여-진은숙의 창작세계 -마르틴 빌케닝
색채, 공간, 마법상자-진은숙 작품의 관현악법에 대하여 -고르돈 캄페
에필로그 · 진은숙, 21세기 음악의 창 -이희경
생애연보
작품 및 음반 목록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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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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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수년 전 줄기세포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연일 방송에서 다뤄진 탓에 배아줄기세포니 체세포니 복제니 하는 생명과학의 용어들이 사람들의 일상 대화에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곤 했다. 또한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한 피겨 스케이터의 환상적인 모습 덕에 사람들은 트리플 악셀와 트리플 러츠 운운하며 경기를 감상한다. 하지만 현대음악을 듣는 일반 청중이 배음렬 화성이니 폴리 리듬이 어떻다느니 평하는 광경은 낯설기만 하다.
현대음악은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애호가들에게도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의 줄임말)’처럼 여겨진다. 왠지 난해하고 지나치게 진지해서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음악. 그런데 정작 현대음악을 접해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서 늘어나는 고음악 애호가들처럼 매니아 층을 형성하는 것 같지도 않다. 최신곡들에 열광하는 여타 음악 분야와 달리 왜 유독 클래식 음악계는 당대의 음악에 이토록 무관심한 것일까? 여기에는 복합적인 문화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원래 음악은 당대에 작곡되어 향유되던 것이었다. 라이프치히 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활동했던 바흐의 음악들은 매주 예배에서 울려 퍼졌고, 모차르트의 오페라들은 빈 궁정사회의 귀족들이 즐기던 여흥이었으며,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빈의 귀족과 시민계급을 열광시켰다. 19세기 초만 해도 콘서트의 레퍼토리는 압도적으로 당대의 음악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 중요한 콘서트 문화가 본격화되면서, 당대의 음악보다는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이전 음악이 선호되었고, 역사주의의 대두로 옛 음악에 대한 신화화, 정전화는 더욱 더 가속화되었다. 이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테크놀로지, 축음기와 라디오의 보급은 시간 예술인 음악의 존재론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특정 시공간에서 해방된 음악(연주)의 상품화를 가능케 했다. 낭만주의적인 비르투오소들의 연주가 음반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가며, 교통 통신의 발달로 투어 연주도 용이해졌다. 이런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20세기 음악 산업에서는 18-19세기 음악으로 넘쳐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암울한 시대였다고 말해지는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현대음악은 이전 시대처럼 청중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콘서트 문화의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광범위한 대중문화의 등장 속에서 그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작곡가들의 태도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끔찍한 학살을 묵도했던 작곡가들의 음악에는 시대의 어둠과 불안, 고통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듣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이다. 한편, 20세기 후반 현대음악의 흐름을 주도했던 서유럽 작곡가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새로운 작곡원리를 시도하며 아방가르드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그들은 음악이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매료했던 정서적 감응, 감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그런 모습이 배제된 추상화된 음들의 구성과 내적 논리에 몰두했다. 그렇게 당대의 음악은 일반 음악회 청중보다는 현대음악 진영 내에서 마치 과학적 실험과 발견을 해나가듯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고자 했다. 현대음악이 낯선 이유는 이러한 여러 복합적인 상황들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가 지나자 전후 아방가르드 이데올로기는 영향력을 잃었고, 더 이상 주류라 칭할만한 이슈와 담론이 해체된 채 현대음악의 흐름에도 지형 변화가 생겨났다. 온갖 다양한 종류의 시도들이 분출되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역사적 거리가 생기면서 꾸준히 연주되며 살아남는 작품들이 걸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현대음악 진영을 넘어 클래식음악 콘서트에도 현대음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진은숙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중반은 이렇게 현대음악이 새로운 자기 진로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진은숙은 한국에 ‘작곡가’라는 존재가 등장한 지 불과 반세기의 시간이 흐른 후에 태어났다. 알다시피 한국 전통음악의 오랜 역사에는 근대적 의미의 ‘작곡가’라는 존재가 따로 없었다. 19세기 말 서양음악의 유입과 함께 등장한 초창기의 ‘작곡가’는 연주자 혹은 교육자를 겸했던 노래(창가 혹은 가곡) 작곡가들이었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윤이상, 김순남 세대(두 사람 모두 1917년생이다)라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형성된 한국의 서양음악 문화는 해방이 된 후에야 비로소 여러 조직들과 교육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되었고, 한국전쟁과 4.19혁명, 5.16 군사정변 등을 거치는 동안 비약적인 성장을 했음에도 작곡계의 활동은 일제 강점기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현대음악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1967년 작곡가 윤이상이 동백림 사건으로 납치 귀국하게 되면서였다. ‘작곡가’ 윤이상의 ‘정치적’ 행위로 널리 알려지게 된 ‘현대음악’이라는 존재. 그런데 그때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병보석으로 지내던 윤이상에게 레슨을 받기 위해 찾아간 이가 강석희였고, 이후 그는 1970-80년대 한국음악계에 아방가르드적인 현대음악을 전파시킨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가 1982년 서울대로 부임해서 맡게 된 첫 제자가 진은숙이다. 말하자면 진은숙은 대학에서 당대의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을 배울 수 있었던 첫 세대였던 셈이다.
진은숙은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두 달여 후에 태어나, 힘들고 가난했던 1960년대를 거쳐, 유신 체제의 박정희 독재 정권 하에서 청소년기를 지냈다. 그녀가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건 두어 살 때 개척교회 목사였던 부친이 집에 피아노를 들이면서였다. 그 소리에 매료되어 음악에 꽂힌 이후, 레슨 한번 받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그녀의 청소년기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교회 예배 반주와 결혼식장 예식 아르바이트로 음악활동을 했고, 음반도 악보도 귀하던 시절 학교 음악실과 대학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음악에 미쳐 살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작곡’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으나 독학으로 힘들게 대학 입학 후, 2학년 때 강석희를 만나며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을 철저하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3학년 때 국제 작곡콩쿠르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독일 유학서 만난 스승 죄르지 리게티는 유행하는 어법이나 아방가르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작곡가로서의 철저한 자기 성찰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3년 간 단 한 작품도 완성하지 못하는 위기를 겪으며 진은숙은 자신과 대면해야 했다.
이 시기 진은숙이 겪어야 했던 고민은 비단 20대 작곡가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그런 성장통만은 아니었다. 유럽 작곡가라면 겪지 않아도 될, 수백 년의 서양음악 전통은 물론이요 20세기 현대음악에 대한 역사를 고스란히 넘겨받은 유럽의 작곡가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1980년대 현대음악의 다양한 흐름이 그녀에게는 그 자체로 혼란이었다. 또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그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찾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스스로와 싸우며 자신만의 음악을 벼려가는 과정에서 1994년 세계 저명 음악출판사인 ‘부시 앤 호크스’와의 전속 계약 등 작곡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천천히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진은숙은 작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창작 활동만으로 먹고사는 전업 작곡가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작품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이 원칙을 고수한다. 그래서 1985년 창작 활동을 시작한 이래 쓴 작품이 30여 곡에 불과하다. 심지어 예전에 쓴 곡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곡은 작품 목록에서 빼버린다. 벌써 그렇게 여섯 작품이 세상을 등졌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높은 질적 완성도를 추구하기에 그녀의 작품들은 세상에 나온 이후 꾸준히 연주되며 청중과 만난다. 어느 위치에 있건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안주하지 않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야말로 오늘날의 진은숙을 있게 한 동력이며, 세계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존재의미이자 가치이다.
진은숙은 음악이 청중과 교감해야지 자폐증환자 같아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유럽 아방가르드의 현학적인 현대음악의 흐름과 거리를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중의 취향에 맞춰 듣기 쉬운 음악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음악은 일반 청중에게 어필하면서 동시에 심층적인 의미를 내포한 음악, 단순함 속에서도 복잡함이 있고, 직접적인 표현 너머에 다의적인 은유가 숨겨진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음악은 현대음악 진영을 넘어 클래식 음악 청중들까지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은숙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곡가여서도, 그녀의 작품이 세계 유명 연주자들의 레퍼토리가 되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에서는 자신의 삶을 소리로 만들어가는 ‘작가’로서의 작곡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평범하지만 흔치 않은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그녀를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독일의 대표적인 음악출판사인 쇼트 사에서 2011년 6월에 출간된 것을 수정, 보완한 번역서이다. 독일어판의 내용은 그대로 가져왔으나 책의 구성이 대폭 바뀌었다. 인터뷰, 작품해설, 시평 및 관련 자료들이 연대순으로 배열된 독일어판은 자료집의 성격이 강한데다 다소 산만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그래서 독일어판에 실린 글들을 성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1부에서는 진은숙의 삶과 음악을 다룬 인터뷰와 작곡가 자신의 글들을 모아놓았고, 2부에서는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해설을 다섯 분야로 나눠 실었으며, 3부에서는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가들의 분석 글을 배치했다. 독일어판의 마지막에 실려 있던 ‘아르스 노바’에 대한 글은 작곡가의 활동에 관한 내용이라 1부에 포함시켰다.
한국어판에 새롭게 첨가된 것들도 있다. 프롤로그에 포함된 지휘자 정명훈의 헌사와 1부의 마지막에 실린 옮긴이와의 인터뷰 및 서울시향 활동에 관한 작곡가의 글, 3부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폴 그리피스의 글이 그것이다. 성악 작품, 협주곡, (순수) 기악 작품, 전자 음악, 오페라의 다섯 영역으로 나눠 진은숙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2부에서도 각 장 앞에 그 장르에 대한 작곡가의 문제의식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덧붙였고, 책의 마지막에 포함된 참고문헌 역시 독일어판에서는 없던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거의 독일어로 나온 자료들이어서 진은숙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하거나 연구하려는 독자들을 위해 영어, 불어권에서 나온 대표적인 문헌들과 한국어로 쓰인 자료들도 정리해놓았다. 에필로그에서는 이 책의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진은숙과 그녀의 음악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짚어보았다.
부디 이 책이 작곡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음악가들은 물론, 음악애호가들이나 현대예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통해 우리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한 권의 교양서로서 널리 읽힐 수 있었으면 한다.
모든 책은 많은 사람의 정성과 노고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 이 책이 번역될 수 있도록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준 휴머니스트 출판사와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체크해준 편집자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한국어판의 편집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자료를 정리하고 이런저런 일들에 세심하게 도움을 준 마리스 고토니, 그리고 인생의 선배이자 여러 면에서 삶의 지표가 되어주는 작곡가 진은숙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번역 작업을 통해 작곡가를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2012년 6월
이 희 경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 4~11.
에필로그
진은숙, 21세기 음악의 창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진은숙을 개인적으로 알게 된 후 필자에게 기억된 그녀의 첫 마디는 독일 현대음악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학 시절 남다른 개성과 끼가 넘쳐 보였던 선배였고, 1990년대 신문지상으로 간간이 수상 소식이 들려와 그녀가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계에 쉽게 안착했으리라 생각했던 나에게 그 이야기는 뜻밖의 충격이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인터넷이 활발하던 때도 아니고, 이제 막 지구 반대편에서 유학 온 음악학 전공자에게 ‘독일 현대음악’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지적은 학문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뒤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음악회장에서 진은숙의 작품을 들었다. 1996년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앙상블 모데른이 연주한 <말의 유희>, 1997년 베를린 예술아카데미에서 크로노스 사중주단이 연주한 <파라메타스트링>, 1998년 ‘인벤치오넨’ 현대음악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의 타악기와 테이프 버전 등 그녀의 음악은 언제나 음악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999년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위촉작 <씨>의 파리 초연과 BBC 위촉작 <시간의 거울>의 런던 초연은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켄트 나가노와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위촉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함께 기뻐하면서 나는 베를린을 떠났고, 이 곡의 성공적 초연을 한국에서 소식으로만 전해 들었다. 얼마 후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현대음악제’에서 바로 그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전율을 느꼈다. 명료하게 구성된 틀 속에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음향 팔레트들. 익숙지 않은 소리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게 만드는 놀라운 음악적 추진력.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어떤 운명적 조우의 느낌. 그때였다. 진은숙을 연구하리라 마음먹은 순간은.
2006년 진은숙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상임 작곡가로 한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아르스 노바’의 음악회 기획은 물론이고 마스터클래스와 강연 진행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열정에 넘친 그녀의 활동이 한국 작곡계와 음악계,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 속에서 관철시키려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비전과 열정, 소신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결코 적지 않다.
우리 사회는 유독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또한 그들의 영향력은 국내 저명인들보다 훨씬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일반인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세계 음악계에서 진은숙은 그런 존재다. 지휘자 정명훈이 진은숙을 서울시향에 영입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국내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더라도 진은숙은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 작곡계, 특히 후학들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기여했겠지만, 서울시향과의 만남은 이 작곡가에게 자신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계기를 제공했다. 20년 이상 유럽에서 활동하며 쌓아온 많은 것들이 국내 음악계를 위해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했고, 그것을 가능케 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은숙의 역할은 무엇일까? 우선 그녀는 많은 학생과 후배 작곡가들에게 하나의 ‘롤 모델’이다. 단지 성공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작곡가’의 존재와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역사적으로 보면 윤이상 역시 그런 존재였으나, 불행하게도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국내 음악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진은숙은 열악한 국내 창작 여건 속에서 젊은 작곡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위촉을 주고 연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곡 기술상의 실질적인 조언과 작가적 태도에 대해서도 피력한다. 어차피 창작은 각자의 개성이 발현되어야 하는 법. 유행과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나 단지 그것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이를 위한 그녀의 선택이었다. 마스터클래스나 강연뿐만 아니라 음악회의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훌륭한 창작의 촉발제가 될 수 있다.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므로.
또한 기획자로서 진은숙의 역량은 지난 7년간 진행된 ‘아르스 노바’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돈 안 되는 ‘현대음악’ 연주회라는 사회적 통념에 맞서 현대음악 연주회로도 충분히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음악회가 꾸준히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프로그램 선정에서부터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순간까지 전 과정을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다. 현재까지 25차례의 연주회가 열리는 동안, ‘색다른 베토벤’, ‘비올라 비올라’, ‘옛것과 새것’, ‘클래식, 민속의 색채를 품다’, ‘댄스’ 등 매회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음악들을 적절한 틀 속에 배치해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해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곡들의 문화사적 맥락과 현재적 의미를 조명하는 음악학자의 깊이 있는 팸플릿과 작곡가 자신이 직접 들려주는 음악회 해설을 통해 청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왔다. 청중과의 공감은 바로 이런 것에서 출발한다.
한국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문화는 특정 계층을 위한 음악인듯 명품 소비의 한 형태처럼 각인되어진 측면이 없지 않고, 현대음악은 시대와 호흡하는 동시대성이 핵심임에도 지나간 아방가르드의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진영화되어 버렸다. 일반 청중은 물론이고 작곡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에게조차 ‘현대음악’은 공감하기 어려운, 기성세대에 의해 강제된 권위로 받아들여지곤 했고, 작곡가들은 점점 더 자신들만의 리그를 공고화해나갔다. 진은숙은 이 리그 밖에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현대음악과 청중의 접점을 시도해나갔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작곡가들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한 소통의 방식을 자신의 스타일로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들을 추진해가는 데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 연주자들은 물론이고 사회 각 분야의 많은 이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금전적 이익이나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에 따라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중적인 레퍼토리도, 스타 연주자도 등장하지 않는 현대음악 연주회는 설 자리를 얻기가 힘들다.
예술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선입견을 불식시키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현실적 조건을 이유로 혹은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에 의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생길 경우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진은숙은 비판적 지적과 함께 합리적인 개선책을 모색한다. 그녀는 어떤 이념이나 악파에 종속되는 것을 싫어한다(스승인 리게티와도 닮은 점이다). 종교인 집안에서 성장했음에도 종교가 없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유연하지만 원칙적이다. 작곡계, 나아나 음악계 전반에서 그녀의 역할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은숙의 상식과 원칙에 입각한 행보가 오늘날 우리의 과제이자 시대정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한편, 진은숙은 우리에게 세계 현대음악의 현장을 들여다보는 일종의 ‘창’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연결하는 글로벌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사이트에서 온갖 종류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고 해도, 누구나 자신이 알고 경험한 세계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우리 주변에 진은숙이라는 작곡가가 현대음악의 창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현대음악 진영만이 아니라 21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고, 이미 고전이 된 많은 20세기 현대음악들과 나란히 일반 음악회의 레퍼토리로 청중과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은숙은 경계를 넘나드는 환상적인 소리의 마술사라 할 만큼 탁월한 음향 감각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작곡가들이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과 달리 진은숙은 전업 작곡가로서 창작에 매진해왔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그 자신의 말처럼 부시 앤 호크스 같은 출판사에 발탁되었던 것도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작곡’ 그 자체에 충실하고자 하는 원칙을 고수하며 이를 위해 삶의 전부를 걸 수 있었던 그녀의 열정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성공한 이들의 결과에 탄복할 뿐 그 과정에서 부딪혔던 수많은 절망과 어려움은 쉽게 간과한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진은숙 역시 끊임없이 자신과 대면하며 매번 겪는 창작의 고통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진은숙이라는 한 작곡가의 삶과 창작 세계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작곡가를 통해 21세기 음악 지형의 한 단면을 조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래의 ‘현대음악’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채롭게 펼쳐질 것이다. 이미 현대음악 진영은 물론이고 기존의 클래식 음악 문화와 전혀 다른 경로로 활동하는 작곡가들도 많다. 진은숙이라는 작곡가를 통해 21세기 현대음악으로 나가는 ‘창’을 열었다면, 그 창 너머에서 펼쳐지는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음악들에도 시선이 가지 않을까. 그 가운데 내게 말을 거는 특별한 음악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의 음악적 취향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으리라.
2012년 8월
이 희 경
『진은숙, 미래의 악보를 그리다』 44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