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통해 낯선 곳을 탐색하는 즐거움 ― 진은숙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리뷰」

한국 음악계에서 작곡가 ‘진은숙’은 ‘현대음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작품 활동 뿐 아니라 기획자로서 그녀는 8년째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연주회 시리즈 ‘아르스 노바’를 진행하며 참신한 주제와 탁월한 선곡으로 20/21세기 현대음악의 흐름을 소개해왔다. 흔히 현대음악은 어렵고 낯선 것, 골치 아픈 것이라 생각하지만, “색다른 베토벤”, “옛것과 새것”, “비올라 비올라”, “아메리카”, “클래식, 민속의 색채를 품다”, “동과 서”, “댄스”, “동화” 같은 주제로 묶인 현대 곡들을 듣다보면 지난 100년간의 음악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왔는지 경험하게 된다. 진은숙은 수없이 쏟아져 나온 20/21세기 현대음악에서 옥석을 가려내 우리에게 들어볼 것을 권하는 ‘소믈리에’ 같은 존재다.

지난 6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3 호암상 기념. 진은숙의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역시 그녀가 마련한 또 하나의 현대음악 성찬이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으로 시작해서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으로 끝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300년의 간극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현악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음악회 시작 전 직접 해설에 나선 진은숙의 언급처럼, 작곡가들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다. 새로운 시도 역시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날 수 있는 법이니까.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의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옛 것과 새 것의 만남, 현대 작곡가들이 과거의 음악과 소통하는 여러 방식들을 보여준 것이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1악장과 3악장 사이에 연주된 핀란드 작곡가 유카 티엔수(b.1948)의 <브란디>(2011)는 단 두 화음밖에 남겨놓지 않은 바흐 협주곡의 2악장을 아예 현대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작곡한 것이다. 바흐의 음악 사이에 끼인 현대음악. 그것은 과거와 현대를 양쪽으로 투영하는 듯하다.

옛 음악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키는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만큼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작곡가도 드물다. 발레음악 <풀치넬라>(1920)가 페르골레지의 오페라를 토대로 만든 것이었다면,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D조 협주곡>(1946)에는 바로크 음악 형식은 물론이고 고전시대의 디베르티멘토나 세레나데 풍의 음조가 현대적인 리듬 및 사운드와 뒤섞인다. 그러면서도 스트라빈스키 특유의 경쾌함이 살아 움직인다.

제목에서부터 바로크 음악과의 연관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알프레드 슈니트케(1934~1998)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1977)은 온갖 종류의 양식과 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작곡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찰랑거리는 쳄발로 소리가 주도하는 바로크 음악만이 아니라 영화음악 풍과 탱고 음향 등이 풍자적으로 암시된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에 등장하는 장치된 피아노(prepared piano)의 일그러진 사운드는 (비록 이날 연주에서는 밸런스가 다소 어긋나긴 했지만) 자유가 속박된 가운데 작업했던 구소련 예술가들의 냉소를 보여준다.

이렇게 과거의 음악들과 자유자재로 접속하는 작곡가들을 통해 우리는 낯선 현대음악의 세계를 익숙함을 매개로 하여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현대음악은 우리 시대의 모습을 다양한 층위에서 담아내고 있다. 낯설고 어렵다는 편견만 조금 벗어던진다면 무궁무진하게 펼쳐진 새로운 음악의 세계와 대면할 수 있으리라.

『클럽 발코니』 69호 (2013년 7~9월호), 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