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
– 빈·파리·베를린·뉴욕, 20세기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현대음악의 풍경
이희경 저 | 휴머니스트 | 2015년 11월
2015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도서
목차
머리말 도시를 닮은 낯선 소리들, 현대음악을 만나다
프롤로그
파리에 등장한 가믈란 악단 |거대한 소리 기계의 등장 |소란을 일으키는 젊은이들
1 세기말 빈, 왈츠의 도시에 피어난 무조음악
쇤베르크를 좋아하세요? 33|세기말 빈의 문화적 풍경 35|무조음악, 불안한 시대와 고독한 내면의 표현 40|시대를 담았으나 시대와 불화하다 46|세기말 부다페스트, 버르토크의 길 48
2 벨 에포크 파리의 빛나는 순간,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
예술의 도시 파리를 뒤흔든 러시아 발레 57|음악과 춤, 극과 회화의 흥미로운 만남 60|니진스키와 드뷔시 64|〈봄의 제전〉,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린 소리 68|발레 뤼스의 새로운 정신, 사티의 재발견74
* 소음의 정치학, 정적의 고고학 78
3 바이마르 시대 베를린의 음악 풍경
패배한 전쟁, 좌절된 혁명에서 탄생한 황금의 1920년대 89|반역과 소통: 다다에서 실용음악까지 95|〈서푼짜리 오페라〉, 시대의 감성을 담다 99|아이슬러, 정치적 음악의 힘 104
4 미국 음악, 재즈와 아방가르드 사이
〈랩소디 인 블루〉, 틴 팬 앨리에서 탄생한 교향악 재즈 113|파리의 아메리카인 116|재즈의 힘: 래그타임에서 오페라까지 120|전통의 부재 혹은 창조: 미국의 실험적 작곡가 124|망명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129
* 녹음 기술이 바꾼 창작 132
5 음악에 새겨진 학살과 전쟁의 상흔
히틀러와 스탈린 치하 현대음악 143|홀로코스트의 기억, 떠난 자와 남은 자 151|전쟁의 포화 속에서 탄생한 음악: 구원, 진혼, 동경 155|내면으로 침잠: 동구권의 현대음악 작곡가 161
6 다름슈타트, 아방가르드 음악의 산실
원점에서 다시 167|쇤베르크는 죽었다: 20대의 반란 168|주체의 종말, 구조의 시대 170|케이지 충격, 우연성 또는 불확정성 174|음향 작곡과 전자음악의 지대 179
* 세계박람회와 현대음악 188
7 68혁명의 여파, 현대음악의 지형을 뒤집다
1968, 음악 무대에 등장한 체 게바라 199|음악의 정치, 정치의 음악 203|아방가르드의 독점적 권위에 도전하다 208|대안적 음악 활동을 실험하다 212|포스트모던, 68혁명이 열어젖힌 새로운 지대 217
8 월드 뮤직, 동서양이 만나다
인도 명상 음악과 미니멀 음악 225|슈톡하우젠의 직관 음악, 영성, 뉴에이지 운동 230|비서구 음악, 이국주의를 넘어 235|동아시아의 목소리: 윤이상, 다케미쓰 도루, 탄둔 242
* 영화 속 현대음악 250
9 테크놀로지 시대, 음악의 새로운 도전
인터액티브 〈뇌 오페라〉 261|컴퓨터 시대의 작곡: 스펙트럼 음악과 알고리즘 작곡 265|사운드 아트: 소리 나는 오브제와 소리 울리는 공간 273| 사운드스케이프, 생태와 음악 사이 277
10 뉴 밀레니엄, 글로벌 시대 비동시성의 동시성
바흐 서거 250주년에 탄생한 네 얼굴의 수난곡 285|음악회장에 들어온 현대음악 289|음악회장 밖의 현대음악 296|백남준의 유산: 뉴미디어 시대 ‘음악’의 경계 303
* 연주자, 창작의 뮤즈를 넘어 308
에필로그
대답 없는 질문 317|고독한 개별자들 320|한국의 현대음악 328
주 336
참고문헌 348
찾아보기 358
머리말
도시를 닮은 낯선 소리들, 현대음악을 만나다
20세기,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 빈ㆍ파리ㆍ베를린ㆍ뉴욕ㆍ모스크바 등 각국의 대도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증기기관차ㆍ전차ㆍ자동차ㆍ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잡다한 소리가 도심을 가득 메웠고, 궁정이나 살롱에서 울려 퍼지던 아름답고 우아한 클래시기 선율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했다. 메트로폴리스라는 20세기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생성되던 새로운 가치를 담아야 하는 시대적 요구 속에 현대음악은 탄생했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장르를 막론하고 ‘동시대의 음악’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일반적으로는 ‘20세기의 클래식 음악’을 가리킨다. 20세기의 작곡가들은 자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기술 발전의 시대를 거쳤으며, 인류사상 최악의 재앙인 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겪어야 했고, 정든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받거나 전체주의 사회의 억압을 피해 내면으로 망명해야 했다. 또한 20세기는 기존의 가치와 관심이 끊임없이 전복되고, 그 전에는 접하지 못한 낯선 나라의 문화와 예술로부터 깊이 영향을 받은 시대다. 더구나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대중음악과 시장을 점유한 과거 고전음악의 압도적 위세 속에서 당대 작곡가들이 가는 길은 틈새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소리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이 있는 작곡가들은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감행했다. 급변하는 20세기에 수많은 작곡가가 상상해 낸 음악적 시도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데, 특히 다양한 지식인과 예술가가 한데 어울렸던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들은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했다. 추상화된 음악만 따로 떼어내기보다는 그것이 생겨난 시대적 맥락을 함께 들여다본다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어렵고 듣기 힘들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현대음악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불편함은 대개 세상과 인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결과이다. 세상의 통념과 인습에 젖어 살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인간의 다양한 삶과 복잡한 내면에 주목한다. 그들이 바라본 세상과 인간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 예술은 비루한 현실에서 못 하는 환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지만, 대면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온몸으로 지각하도록 일깨우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도발은 세상을 놀라게 하거나 사람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비록 추상적인 ‘소리’로 표현하지만, 현대음악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아름다움 대신 불편한 소리, 낯선 음조, 이상한 리듬, 거친 표현 등 새로움의 길을 개척한 현대음악은 세상과 인간의 숨겨진 면모들을 드러낸다. 처음 들을 땐 이상해도 한두 번 더 들으니 가슴에 와 닿는 음악, 낯설지만 왠지 끌리는 음악, 복잡한 심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쾌감을 주는 음악,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음악, 황당하지만 흥미로운 음악, 깊은 감동을 안기는 음악 등 여느 음악처럼 현대음악도 온갖 결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현대음악이라는 존재는 낯설기만 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예 존재감이 없고,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잘해야 호기심을 일으키는 대상이며, 음악 전공자들에게는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귀어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현대음악이 이렇게 된 데는 그 낯섦과 불편함에 1차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 낯섦과 불편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음악학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탓도 크다. 낯선 존재일수록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만나는가가 중요하듯, 자연스러운 만남을 주선하는 일은 음악학자의 몫일 것이다.
오늘날 음악은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음악은 사유의 대상이라기보다 힘든 삶에서 안식이 필요할 때 찾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넘쳐나는 음악들 틈에서 현대음악은 특유의 진지한 어조로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날 때 느끼는 설렘과 긴장처럼 낯선 현대음악은 우리의 감각과 의식을 확장한다. 지난 100년간 진행된 현대음악의 의미 있는 흐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 작곡가들의 고민과 그들이 남긴 음악적 흔적은 분명 가까운 과거를 통해 우리 시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음악을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이 그려 본 20세기 현대음악의 풍경이다. 무엇보다 메트로폴리스에서 벌어진 현대음악의 다양한 모습을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며 음악을 통해 시대를 읽어보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음악평론가 로스(Alex Ross)가 쓴 현대음악 교양서의 부제처럼 ‘음악으로 듣는 20세기’랄 수도 있겠다. 주요한 음악적 사건이나 작품을 통해 대략 10년 단위로 시대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열 장면이 그렇게 배치되었고, 그 장면에서 비껴나 있지만 현대음악을 만날 때 놓쳐서는 안 될 주제가 다섯 가지 짧은 책갈피에 담겼다.
책을 처음 구상한 것은 벌써 15년 전쯤의 일이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직접 경험한 20세기 현대음악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다. 일반인과 음악 애호가는 물론이고 연주자와 작곡과 학생들에게도 외면받는 당대의 음악에 대한 안타까움에서였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필이 미뤄진 동안 현대음악의 지형은 많이 변했지만, 다행히도 현대음악을 접할 기회는 월등히 늘어났다. 전에는 구하기 어렵던 음원을 요즘은 파일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유튜브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거의 모든 곡을 (때로는 실연까지)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뒤 여기서 다룬 음악들이 듣고 싶어진다면 내 목적을 이룬 셈이다. 현대음악과 독자의 만남을 주선한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이 책의 각 장 끝에 소개한 음반 목록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혹 직접 찾아 듣지는 않더라도, 우연히 찾은 음악회나 미술관에서 혹은 컴퓨터로 다른 음악을 검색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곡가와 작품의 이름을 접했을 때 친근하게 느끼게 되어도 좋다. 그렇게 현대음악도 미술이나 연극, 춤 등의 다른 장르들처럼 폭넓은 청중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드코어 록밴드나 프리재즈 마니아도 있는 마당에 현대음악 애호가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
긴 세월을 묵힌 기획인데도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애써 준 휴머니스트 편집부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또 다양한 영역의 책들이 출간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도 감사드린다. 이런 기회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가 많이 제작되어 음악 관련 서적 독자층의 폭이 넓어지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오랜 집필 기간 동안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 이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랑하는 아들 용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엄마와 학자라는 두 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던 지난 세월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2015년 11월
이 희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