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Performer’s Studio의 리게티 <호른 트리오> 워크숍 때 진행자로 참여하고, 2007년 칼럼을 기고한 후, 10년 만에 다시 시즌 리뷰를 맡고 보니, 지난 15년 간 이 시리즈를 이어온 분들의 노고가 먼저 떠오른다. 학내 행사로 학생들을 위한 현대음악 교육 차원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가 어느덧 상주단체를 지닌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매회 참석할 순 없었으나 지난 세월의 변화를 지켜 본 입장에서, 소중하게 키워 온 이 시리즈가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 현 시점에서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2016년 가을시즌은 상주단체인 ENSEMBLE2021의 공연과 국내 첫 내한한 ‘앙상블앵테르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 이하 EIC)’의 특강과 워크숍 및 마스터클래스로 꾸며졌다. 그간 많은 해외 음악가들이 이 시리즈에 참여했지만,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현대음악 전문단체가 학생들과 만나 자신의 경험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6년 10월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대학교 예술관 콘서트홀에서 열린 ENSEMBLE2021 연주회는, 앙상블 예술감독 최희연 교수가 지난 칼럼에서도 썼듯이, 21세기 글로벌 시대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우리의 고유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는 무대였다. 이제는 고전이 된 드뷔시의 현악사중주(1893)와 졸리베의 <리노의 노래>(1944)에서 공모 선정작인 말레이시아 출신 사이드 샤피(Sayyid Shafiee, 1987-)의 <기발한 산책(Whimsy Walk)>(2015)까지 다양한 세대 여러 지역 출신 작곡가들의 일곱 곡이 선보였다. 윤이상(1917-1995), 쿠르탁(1926-), 폴 메파노(Paul Méfano, 1937-), 티엔수(1948-)는 각기 한국·헝가리·이라크·핀란드 출신으로, 20세기 후반 유럽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 있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열어간 이들이다. 이렇게 구성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특히 눈길이 갔다.
패기 넘친 젊은 작곡가 샤피의 활기찬 피아노 트리오는 ‘기발한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단편 영상처럼 지나가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음악이었다. 이어진 쿠르탁의 비올라 독주곡 <기호, 게임, 메시지>(1961-2005)은 작고 왜소한 음향 속에 거인이 자리 잡고 있는 작품이라는 소개로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으나, 연주된 짧은 두 곡만으로 그 음악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는 어려웠다. 윤이상의 말년 작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 1>(1992)에서는 작곡가의 분신 같은 악기 첼로를 통해 평생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며 마주한 인간 존재의 고독과 허무함,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삶의 의지가 느껴졌다. 이와는 전혀 다른 신화적 세계의 졸리베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리노의 노래>에 이어 연주된 독주곡들은 모두 전자음향이 포함된 곡이었다. 메파노의 증폭된 콘트라베이스 플루트를 위한 <정지된 선(traits suspendus)>(1980)이 색다른 플루트 주법과 음향에 대한 탐색이었다면, 티엔수의 첼로와 전자음향을 위한 <오드잡(Oddijob)>(1995)은 리버브와 딜레이 기법으로 덧씌워진 전자음향이 첼로의 그림자처럼 때로는 동반자처럼 흘러나오는 곡이었다. 마지막을 장식한 드뷔시의 현악사중주는 역시 이 장르의 현대적 고전이라 할만 했다.
ENSEMBLE2021의 음악회는 실험성이 강한 아방가르드적 작품에서 현대음악의 고전까지, 전자음악에서 서정적인 작품까지 현대음악의 다양한 모습을 맛볼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 구성이 돋보였다. 연주는 전반적으로 훌륭했지만 각 곡의 특성이 좀 더 부각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연주자들의 역량이 최대치로 발휘되지 못한 느낌은 아마도 텅 빈 객석의 음악회 분위기에서도 기인하는 것 아닌가 싶다. 학내 연주에서 이렇게 훌륭한 프로그램과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이 좋은 음악을 몇 십 명밖에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너무 안타까웠다. 관악 캠퍼스의 외진 위치, 학내에서 진행되는 행사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무대 위 연주자들의 열정에 부응하지 못하는 어두운 청중석의 고요함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객석과 무대의 간극은 너무 컸다. 굳이 외부 청중을 염두에 두지 않고 캠퍼스 내 교직원과 학생들만을 위해서도 이처럼 좋은 문화행사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는 없었을까. 오히려 관악 캠퍼스의 고립된 위치는 학내 구성원들의 문화적 욕구를 자극하고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텐데 말이다.
2016년 10월 24일과 25일에는 EIC의 예술감독 마티아스 핀터와 단원들이 서울대를 찾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 피아니스트 디미트리 바실라키스를 비롯해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 트럼펫, 트롬본, 첼로까지 총 아홉 명의 단원들이 이틀간 마스터클래스를 열어, 악기 당 적게는 세 명, 많게는 열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25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던 리딩 세션은 서울의 열악한 교통 사정으로 단원들의 도착이 늦어져 10시 30분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EIC은 오래 전부터 매년 젊은 작곡가들의 미발표 곡들을 공모해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하는 ‘리딩 패널’을 운영해 왔다. 이들이 첫 한국 방문에서 젊은 작곡가들과 만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IC의 서울대 리딩 세션에는 젊은 작곡가 네 명(김승연, 배승혜, 송향숙, 이승은)에게 약 20~30분씩 시간이 할애되었다. 작곡과 학생들도 참석해 그 과정을 볼 수 있도록 공개된 자리였지만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눈에 많이 띠었다.
리딩 세션 참여 작곡가들에게는 이 자리가 자신이 머릿속에서 구상한 음들이 실제 어떻게 소리 울리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시간임에도, 자신의 작품을 장황하게 ‘말’로 설명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점은 안타까웠다. 제한된 시간에 연주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간결·명료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터다. 게다가 핀처와 단원들이 악보를 읽어가면서 불어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악보를 정확히 연주하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작곡가나 객석에 앉아있던 학생들에게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참여 작곡가 중에는 작품 설명을 불어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연주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을지 모르나, 역시 교육적인 자리에 대한 배려는 부족했다고 보인다. 콘서트홀의 조명도 문제였다. 무대 위 연주자들도 어둡다는 지적을 했지만, 객석에서 악보를 보며 연습 과정을 따라가려던 학생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 내 리딩 세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진행이 원만하게 이뤄지진 못하며, 귀하게 마련된 자리가 너무 형식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오후 2시에는 EIC 예술감독 핀처의 특강이 예술복합동 오디토리엄에서 있었다.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작품들 몇 곡을 설명하고 들어보는 자리였다. 히브리어의 매력에 빠져 썼다는 바리톤과 챔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솔로몬의 정원에서 나온 노래(Songs from Solomon’s Garden)>(2009),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사이 톰블리의 그림에 영향 받았다는 현악3중주 <스터디 II for Treatise on the Veil>, 대규모 앙상블곡 <창세기(Bereshit)>(2011/12),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우리엘(Uriel)>(2012) 등을 다뤘다. 1시간가량 자유롭게 흘러간 발표 이후 학생들의 질문에서는 작품을 구조화하는 과정, 가사와 음악의 관계, EIC 예술감독으로서 생각하는 아시아 작곡가들에 관한 의견 등이 나왔다. 바쁜 일정으로 인한 제한된 시간에 진행된 특강이었지만, 독일 출신 작곡가로 프랑스 현대음악 앙상블의 수장이자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작곡과 교수로 활동하는 핀처의 모습을 읽어내기엔 충분한 자리였다.
지난 가을 STUDIO2021의 행사는 알찬 내용으로 주목할 만했지만, 그에 값할 만한 성과를 이뤘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학과 행사에 적은 인원으로 현대음악 시리즈를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단순히 작곡과의 연례행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계속해서 진화해 가야하는 유의미한 음악 활동임을 구성원들이 동의한다면, 이제는 이 탄탄한 음악적 내용을 어떻게 공유해 나갈 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며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의 위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가,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가, 그 고민의 과정과 결과가 들려져야 한다.
청중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작곡과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이 이 시리즈의 의미에 충분히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그 일에 나설 수 있도록 학교가 독려하고 지원하는 일일 거다. 서포터즈를 모집해서 ‘유급’ 학생 홍보단을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음악회 콘셉트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들의 감각과 언어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리게 한다면, 캠퍼스 내에서 찾아오는 학생 관객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교수 사회에 이 시리즈의 매력이 적극적으로 설파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현대 음악회야말로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좋은 아이템 아닌가. 퇴근 후 한번 쯤 색다른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건 교직원들에게도 흥미로운 선택일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즌 주제와 이슈를 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자세가 선결되어야 할 일이지만.
『SNU New Music Series. STUDIO2021』 (2017.09.), 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