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공공성 논의를 시작하며” (이희경)
1. 문제의식의 출발
음악의 ‘공공성’ 논의에 앞서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본다. 부산 출생으로 1980년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상경한 내게 음악계는 온통 부조리함으로 가득 찼던 거로 기억된다. 음악을 ‘연주’하는 대신 ‘연구’하는 것으로 진로를 바꿔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지 못해 방황했다. 이 엄혹한 시대에 대체 ‘음악’이 뭐란 말인가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의 근저에는 이 음악이 우리 사회의 삶과 밀착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와 무관하게 성장한 배경 탓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마냥 좋아하기엔 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했고, 거기서 어떤 진정성도 느끼지 못한 채 점차 음악으로부터 멀어져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 후 학업은 팽개치고 노래운동, 문화운동, 노동자문예운동 언저리에서 활동하며 오히려 음악에 대한 잃었던 애정을 되찾았고, 베를린 유학 시절 음악가로서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음악 자체가 아니라 그 음악을 하는 사람들, 왜곡된 한국의 클래식 생태계였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19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음악적 역량만이 아니라 음악가들의 활동 양상이나 두터워진 관객층 등 긍정적인 변화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반세기 이상 계속되어온 잘못된 구습이 더욱 공고화된 것도 사실이다. 대학과 협회를 중심으로 먹이 사슬처럼 얽혀 거대한 이익 집단이 되어버린 주류 음악계는 변화하는 세상과 호흡하기보다 구조화된 낡은 관행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해방 이후 줄곧 클래식 음악은 주류 사회의 지배 문화로 특권을 누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가 민주화되며 클래식 음악계에도 지난 세기의 활동 방식을 넘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음악 활동을 실천하는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는 것만이 음악가의 삶이라 여기는 의식은 강고하고, 일반인에게 클래식 음악은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친다.
코로나19 상황 이전부터 이미 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되었는데 정확한 현실 인식이나 뼈아픈 자성은 보이지 않고 각자의 어려움을 내세우며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높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은 어떤 존재였나, 음악가들은 세상과 어떻게 만나왔나, 음악계 내부에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음악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는 음악이 일부 애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생각이다. 음악가들이 사회 속에서 생존해갈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상상되고 실천될 때, 클래식 음악의 건강한 생태계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공공성(publicness/Öffentlichkeit)’은 사회과학 영역, 주로 행정과 정책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다. 공공의 이익이나 가치, 공공 영역, 공적 수행 주체 등 다양한 층위에서 사용되고, 국가에 관계된 ‘공적인(official)’, 모든 사람에 관계된 ‘공통적인(common)’, 누구에나 열려있는 ‘개방적(open)’인 것이라는 의미로 규정되기도 한다[사이토 준이치, 『민주적 공공성. 하버마스와 아렌트를 넘어서』, 2009, 28]. 사용하는 맥락이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함의를 지닌 이 용어를 현재 우리 음악계의 문제를 진단하고 내부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화두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음악의 사회적 존재의미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유용한 출발점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예술의 공공성을 둘러싼 몇 가지 논점
예술의 공공성 논의는 주로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뤄져 왔다. 예술 부문에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서 공공성이 강조되었고, 심미성이나 예술성에 더해 공공성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 공공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예술의 가치와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견해가 나오기도 한다. 공공의 가치가 반드시 사회구성원 전체의 효용 극대화라는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접근될 수도 없고, 예술이 드러내는 현실 전복적인 요소가 때로는 공익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공공성의 내용은 사회 환경과 여건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이 부각되기도 한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으로 출간된 『퍼블릭: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사회학ㆍ경제학ㆍ법학ㆍ행정학ㆍ정치학ㆍ미학에서 ‘공공성’ 개념이 이해되는 상이한 맥락을 다뤘다. 사회학자 김세훈은 예술의 공공성을 비판적 의사소통과 교육이 수행되는 영역으로 설명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이후 ‘예술 공론장’ 논의로 이어졌다. 하버마스의 공론장과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적용해 탐색하거나, 하버마스의 이론과 부르디외의 예술 장 개념을 결합해 설명하기도 한다. 예술 공론장은 예술을 매개로 타자와의 소통을 이끌어 내며 다양한 관심사와 가치에 대한 생각을 넓혀가는 곳이자, 사적 영역에 머물던 개인이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공적인 주체, 공중으로 거듭나는 영역으로 이해된다. 자유로운 비판과 교육이 수행되는 공공 영역에 예술가의 행위가 접목될 때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서로 대립되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무수히 많은 지점에서 부딪히고 충돌한다. 예술의 가치와 특성이 공적 지원의 대상이 되는 데 이견이 없더라도 공적 지원을 제공하는 주체는 공공성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반해, 지원을 받는 예술가들은 예술이 지닌 내재적 가치를 중심으로 공공성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근거가 취약할 때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은 정권의 이해를 구현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공공성’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일반 사회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라면, 예술의 공공성은 미적 예술성과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하고, 단순히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나 활동에 그쳐선 곤란하다[하형주, 「예술에서의 공공성이란?」, 『연극평론』 93, 2019, 116]. 예술 영역에서 지향해야 할 공적 가치, 공익은 개인의 창의성, 상상력, 감수성, 미적 감각을 풍부하게 하고 사회구성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며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등 예술의 내재적 가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김세훈·정기은, 「예술정책에서 공공성의 함의에 대한 연구」, 『공공사회연구』 7-1, 2017, 303-304].
예술의 공공성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공공 미술’ 분야는 공공성을 둘러싼 이념 지형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60년대 처음 그 용어가 나왔을 땐 공공 ‘공간’에 설치된 벽화나 조각 등을 지칭하는 장르처럼 사용되다, 1980년대 초 리처드 세라의 <휘어진 호> 설치와 철거 사건을 계기로, 공공성이 장소가 아닌 그 장소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 공동체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났다. 1980년대 후반 미술과 시민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며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공공 ‘영역’에서의 미술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공공’만 있고 ‘미술’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지만, 미술이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관계 맺고 상호 소통하는 것으로서 자리매김했다.
국내의 공공 미술도 지난 15년간 많은 활동이 있었다. 환경 운동가와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안양천 프로젝트(2004)에서 촉발된 안양 공공예술 비엔날레, 중앙정부의 ‘아트 인 시티’와 지역문화재단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시 도시갤러리, 마을 미술 프로젝트, ‘도시공원 예술로’, ‘서울은 미술관’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 사업들은 실제 주민이나 공동체의 요구였다기보다 행정의 필요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단기 목표 중심의 과제 설정은 휘발될 수밖에 없으므로 예술가가 천착하는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10년, 20년, 30년 삶 전체를 던지는 그런 프로젝트여야 함을 강조하며, 예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화두로 삶 자체를 재구성하는 방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지난 3월 19일 열린 “2020년 아르코 공공예술 토론회”에서 이광준 큐레이터와 박찬국 작가의 발언]. 1990년대부터 공공 미술을 해온 김용익 작가는 “이기적 모더니즘으로 생긴 병이 이타적 공공 미술로 치유되었다”면서도 자신이 해 온 공공 미술 작업과 순응적인 커뮤니티 아트에 대해 비판적이다. 자신의 정체성은 공공 미술이냐 모더니즘 미술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타적-이기적 세로축과 전복적-순응적 가로축으로 이루어진 미술 좌표상의 어느 한 지점”에 가능태로 존재한다고 여긴다. “이타적이고 전복적인 공공 미술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 작가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미술가가 공동체와 결합하는 방식은 공공 미술이나 커뮤니티 예술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미술관을 넘어 구체적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미술가와 공동체가 만나는 복합적인 장이라는 점에서 공공 미술은 하나의 장르라기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예술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생활 예술이 주목받으면서 전문 예술과의 관계가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문화 정책의 이념 지형이 ‘문화 민주화’에서 ‘문화 민주주의’로 이행하며 예술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근본적으로 의문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 예술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듯하다. 훌륭한 예술을 더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 민주화’ 정책이 전문 예술인을 중심에 두었다면(culture for everyone), 누구나 문화 창조와 향유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문화 민주주의’ 정책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수동적 예술 향유자를 넘어 예술 창조의 능동적 주체가 된다(culture by everyone). 교육 받은 시민 계층의 확대에 따라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문화 자본이 민주화되는 걸 넘어 예술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전문가 집단이 인정하는 수준 높은 예술 대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자발적 예술 활동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문 예술가의 역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생활 예술과 전문 예술의 공존은 예술가와 시민의 관계가 평등하게 정립되고 예술가가 일상을 주민과 심층적으로 공유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생활 예술과 전문 예술은 대립적이다. 한정된 예산에 생활 예술 지원이 늘면 자연히 전문 예술의 파이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문인 체육과 생활 체육이 서로 대립하기보다 상생하듯이, 예술가들도 사회 속에서 시민들과 더욱 밀착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전문 창작자들이 시민들의 예술 활동을 견인하며 공적 주체로 나아갈 때 예술의 공공성은 단지 지원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적 존재 근거가 되지 않을까.
3. 음악계의 현실 인식, 공공성 논의의 시작
음악 분야에서도 공공성 문제는 중요한 화두의 하나다. 전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의 위기 상황에서 2002년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에 부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청소년 프로젝트였고,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무상 음악 교육의 성공 사례인 ‘엘 시스테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지지가 비교적 탄탄한 유럽에서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위기감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고심해왔는데, 국내 음악계는 어떤가.
2019년 10월 “2019 대한민국 오페라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참관 후기”라는 한 오페라 애호가의 글이 페이스북에 공유된 적이 있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던 당일 심포지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글[https://jdasam.tistory.com/319 참조]이었는데, 2018년 서울대에서 열린 오페라 심포지엄에서도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던 지라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오페라 제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탁상공론 벌인다고 무슨 도움이 되나, 영양가 없는 해외 사례 소개 그만하고 우리 조건에 필요한 게 뭔지 질문해야 하지 않나, 공적 자원 투입을 눈 먼 돈 인양 당연시하는데 일반 국민이 필요한 투자라 여기도록 설득해본 적 있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고민이나 성찰은 없이 뮤지컬과 비교하는데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나, 대다수 국민에게 오페라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오페라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정말 오페라 발전을 원한다면 쓴소리 해 줄 외부 인사, 문화 예산 분배 정책 관련자, 오페라에 후원 안 하는 이유 물어볼 기업 담당자를 불러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않나.
닫힌 계 안에서 고립되어 공회전 하는 듯한 모습은 오페라 분야만이 아니라 현재 주류 음악계 전반에 해당하는 얘기다. 오랫동안 구축된 기득권층은 대학, 협회, 단체 등을 중심으로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비대해져 현실의 변화에 대응할 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회적 수요는 턱없이 낮은데 공급은 넘쳐나고, 음악가의 주 수입원이 입시 레슨인 기형적인 구조는 수십 년 간 여전하다. 과잉 공급 상태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도 가르칠 학생이 없는 상황이지만 다른 대안을 찾기보다 먹이 사슬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진입하기 위한 경쟁만 치열해졌다. 이런 환경에서도 대학들은 여전히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교육 방식과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 경쟁에 내던져진 청년 음악가들은 졸업 후 ‘현타’가 온다. 음악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지극히 제한적이니, 그야말로 각자도생하며 살아남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학위 장사로 이윤 추구의 도구가 되어버린 대학에 미래의 음악가들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생존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길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일은 허망한 기대다.
이 냉엄한 현실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활동을 시도하며 고군분투하는 음악가들도 있다. 이들은 연습실에만 갇혀 있는 후배들에게 폭넓게 사회를 경험하며 자신의 장점을 찾아가라 조언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악기를 시작해 매일 연습에 매진하느라 세상과 소통하는 법에 익숙지 않은 청년 음악가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의전당이 아니어도 곳곳에 유의미한 무대는 많고 세계적인 스타보다 주변 사람을 감동을 주는 음악가가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해도 와 닿지 않는다. 2016년 피아니스트 박종화는 특수 제작된 트레일러에 그랜드 피아노를 싣고 제주 해변에서 화성의 철강 공장, 연천 군부대까지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다. 비록 일회적 이벤트에 그치긴 했지만, 무대 위에서 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음악가들은 적지 않다. 들을 준비를 하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아니라 관심 없는 사람들의 귀를 열고 마음을 움직이려면 연주되는 음악이 정말 좋아야 한다.
더하우스콘서트 대표 박창수는 예술의전당에 가야만 문화생활을 하는 거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늘 음악을 접하는 문화를 만들어보려 애써 온 음악가다. 2002년 시작된 ‘하우스콘서트’도 한국 음악계의 지형에 조용한 변화를 일으켰지만, 10년을 이어온 후에는 ‘일상에 살아있는 예술’을 모토로 내건 일종의 문화 운동을 시작했다. 2012년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사건’은 전국 23개 극장에서 일주일 동안 100개 공연을 여는 획기적인 시도였는데, 하우스콘서트처럼 친밀하게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할 수 있도록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 공연을 했고, 관계자들이 ‘우리 지역에 이런 클래식 수요가 있었나’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 후로도 하우스콘서트는 매년 색다른 기획으로 새로운 관객을 찾아 나섰다. 클래식을 처음 접한 사람이 ‘이것도 못 들어줄 음악은 아니구나’ 생각하며 조금씩 그 매력을 경험해갈 수 있는 문화 환경을 만들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 점에서 하우스콘서트의 시도들은 ‘음악의 공공성’ 측면에서 유의미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기관이나 음악 단체들도 음악의 공공성을 내세운 공익 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시향은 지역 구민을 찾아가는 ‘우리 동네 음악회’, 발달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행복한 음악회, 함께!’를 비롯해, 생애 주기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우리 아이 첫 콘서트’, ‘음악 수업 2교시’, ‘퇴근 길 토크 콘서트’, ‘시니어 힐링 콘서트’ 등을 진행하고 있고, 세종문화회관도 문화 소외 계층 및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예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세종 꿈나무오케트라’ ‘세종 꿈나무국악단’을 운영 중이다. 엘 시스테마형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활동인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은 어느덧 10년이 넘었고, 역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주관 하에 진행 중인 ‘꼬마 작곡가 프로그램’도 서울을 포함한 10개 도시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런데 기관의 이런 공익 사업들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4. 시민으로서의 음악가
2019년 7월 ‘사회참여적음악가(Socially Engaged Musicians, 이하 SEM) 네트워크’는 뉴욕 필에서 티칭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홍지혜 선생을 초청해 “시민으로서의 음악가, 리더로서의 음악가”라는 제목의 포럼을 열었다. 그녀는 줄리아드 음대 입학 직후 지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0년 후 너희 중 몇 명이나 전문 연주자로 활동할 것 같으냐?” 최고 음악 학교에 입학해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창창한 미래를 꿈꾸었을 신입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얘기가 아닐까 싶지만, 음악계의 현실을 정확히 알려주고 자신의 재능과 성향과 조건에 따라 진로를 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건 교육기관의 책무이기도 하다. 21세기에 필요한 음악가는 어떤 존재일까.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해도 직업 연주자로 살아남기 어려운 게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의 현주소다. 사회적 수요가 턱없이 낮다는 건 지금까지 음악가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민으로서 지역 공동체의 잠재적 필요에 부응하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늘어날 때 사회와의 접점도 커져 갈 것이다. ‘SEM 네트워크’는 지난 십 수 년 간 현장에서 음악가들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들을 실천해온 음악가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엘 시스테마형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7~10년 간 이어온 음악가, 기획자, 사회복지사 등이 주축을 이루는데, 2018년 “음악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청년 음악가들을 위한 ‘SEM 부트캠프’를 개최했고, 이후 공개 포럼에서 아동·청소년 복지와 음악, 티칭 아티스트의 역할, 공적 개발원조(ODA)의 음악 교육 지원 등 음악가들의 다양한 사회적 실천 경험을 공유했다. 2019년에는 카네기홀 자장가 프로젝트를 한국 상황에 맞게 바꿔 진행한 ‘엄마의 작은 노래’로 잔잔한 감동을 안겼는데, 3세 이하 아이를 둔 다양한 배경의 엄마들과 작곡가들을 매칭해 그들만의 자장가를 작곡해 발표하는 이 프로젝트는 여러 기관에서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올키즈오케스트라(사단복지법인 함께 걷는 아이들에서 운영), 세종꿈나무오케스트라, 서울 성북과 평창의 ‘꿈의 오케스트라’ 활동에서 입증되듯 엘 시스테마 교육은 음악을 통한 사회적 공감과 실천이고, 지역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다. 참여 음악가들은 단지 악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지역사회와 교감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성장해간다.
‘음악의 공공성’은 예술 교육이나 생활 예술의 측면에서만 논의되는 게 아니다. 음악가들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은 다층적이다. <두부와 콩나물> <안녕? 딸꾹!> 같은 어린이 음악극으로 전국의 어린이 병동과 박물관 등에서 공연을 펼치는 ‘미리오페라단’의 활동이나, 계촌클래식마을·동편제국악마을처럼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을 연결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에서도,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말러 연주나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찾아가는 음악회, 반려 악기 캠페인 등에서도 음악의 공공성은 발견될 수 있다. 이를 실현하는 어떤 모델이 있는 게 아니라, 주목할 만한 음악 활동에서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널리 공유해 우리 사회 곳곳에 음악이 유의미하게 자리매김토록 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은 친밀하면서도 사회적이고,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경험이다. 이 발제문에서는 ‘음악’의 공공성이 지닌 고유함을 다루지 못했지만, 음악 공론장의 특징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다면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이나 음악의 존재 의미도 좀 더 분명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17』 (2020),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