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열전 2020!’ 음악 분야 최종발표 리뷰」 (2021.03.)

일시: 2021년 2월 4일 (목) / 장소: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연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지휘: 장윤성)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차세대열전 2020!’ 음악 분야 최종발표는 다섯 연구생의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초연되며 마무리되었다(다른 한 명의 음악 연구생은 연초에 단독 음악극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힘든 한 해를 보낸 와중에 젊은 작곡가들의 고뇌와 열정이 느껴지는 신작들이 성공적으로 청중을 만났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기쁘게 했다. 당사자인 연구생들은 물론이고, 이들의 창작 과정을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 작곡가들, 무사히 공연을 치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아르코 담당자들 역시 초연 무대의 흥분과 열기가 느껴졌던 성공적인 음악회에 누구보다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개성을 지닌 다섯 작곡가의 신작 공연은 자칫 낯선 작품들의 나열로 지루해지기 쉬운데, 음악적인 흐름을 고려한 적절한 프로그램 구성 덕에 일반 음악회 못지않은 집중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들이었다는 점에서 차세대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돕는 아카데미 사업의 의미를 재확인한 자리였다.

5인 5색의 다섯 작품이었지만 이번 발표곡들의 공통점은 모두 협연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곡들이었음에도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곡마다 둘 이상의 협연 악기들이 등장해 다채로움을 선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롱샹성당에서 느낀 인상을 네 개의 악장에 담아낸 정철헌의 대금과 하프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시작으로, 춘앵무를 현대음악으로 재해석한 박정은의 <Re-MU(霧) 다시, 날다>에서는 국악 타악기와 피리가 협연했고, 이어진 박윤지의 국악 타악 협주곡 <Sun-rise, Sun-set>은 일출과 일몰에서 떠올릴 수 있는 태양의 이미지를 두 명의 타악기 주자가 온갖 악기들로 표현했다. 2부에선 천지인의 상징을 세 악기에 부여한 장민석의 거문고ㆍ생황ㆍ아쟁을 위한 <삼신(三神)>에 이어, 하모니카의 발전 과정을 네 악장으로 구성한 김형준의 하모니카 협주곡 <하모니카 메모리얼>이 선보였는데, 이 곡에선 하모니카와 함께 피아노도 협연 악기로 활약했다. 대금과 하프, 거문고-생황-아쟁, 하모니카와 피아노 같은 흔치 않은 조합의 소리는 물론이고, 국악 타악기와 피리 혹은 다양한 타악기들이 빚어내는 소리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이토록 다양한 협연 악기들을 접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처음 듣는 작품에도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으리라.

이 작곡가들에겐 모두 분명한 창작 아이디어가 존재했다. 프랑스 롱샹성당을 보러 갔을 때의 특별한 경험이나 일출ㆍ일몰 같은 자연현상에서 접한 인상으로 음악적 상상력을 펼치기도 하고, 궁중정재 춘앵무나 무속의 삼신 설화를 음악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하며, 비주류악기인 하모니카의 음악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서 출발하기도 했다. 자신의 일상이나 관심사에서 창작의 모티브를 얻는 차세대 작곡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이 구상들을 실제 소리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음악적 이유와 음향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좀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마지막 곡을 제외하곤 모두 국악기가 포함되었는데, 왜 그 악기여야 했을까, 굳이 저렇게 많은 악기가 필요했을까, 서양 악기들과(특히 오케스트라와)의 이질감과 음향 밸런스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한 걸까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음악적 혹은 시각적 ‘효과’를 위해 악기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경우에도 작품 안에서 구성력이 담보되어야 하는 법이다. 마지막 하모니카 협주곡의 경우는 곡의 콘셉트에 맞게 옛 음악이나 재즈 어법들을 자유롭게 구사해 청중의 환호를 받았지만, 공연 후 유사 작품의 존재를 지적한 관객들이 있었던 걸 보면, 참조한 레퍼런스에서 벗어나 좀 더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차세대열전 2020!’ 음악 발표는 전체적인 공연의 완성도나 각 작품의 매력이 돋보인 공연이었고, 이 젊은 작곡가들의 이후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머릿속 구상이 구체적인 소리로 만들어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숙성되는 데도, 그 아이디어가 음악적인 꼴을 갖춰나가는 데도, 악보 위에 적어놓은 음들이 연주자를 통해 소리로 구현되는 데도. 아마도 작품에서 미진했던 점은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덮어두지 말고 더 밀고 나가면 되고, 악보와 실연의 간극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발견되었다면 개작을 통해 좀 더 밀도 있게 벼려 나가면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창작아카데미의 존재 이유다.

창작아카데미 사업은 예술위의 여느 창작지원과 달리 최종 작품의 결과물만이 아니라 창작의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조사연구ㆍ강의ㆍ네트워킹ㆍ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ㆍ중간발표를 통한 피드백 등,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설계된, 아르코로서는 상당히 정성을 쏟아 만들어가고 있는 사업이다. 최종 결과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얻는 게 훨씬 많은 것이 이 프로그램의 큰 장점이다. 예술가들은 대개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게 마련이지만, 타 분야 예술가들을 만나 교류하며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시야를 넓힐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무형의 자산들이 이후 활동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품 발표로 이력에 한 줄 보태는 것보다, 동료 예술가들과 나눈 얘기, 낯선 분야에서 받은 자극, 그로 인해 생긴 질문과 고민, 그 과정에서 생긴 인연 등이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성장해 나가는 데 더 큰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몇 년의 관행 때문인지 창작아카데미 음악 장르에는 오케스트라 작품을 시도하는 작곡가들이 많이 응모하는 듯하다. 사실, 차세대 작곡가들을 위한 오케스트라 작품 발표 기회는 대학이나 기성 교향악단들이 제공해야 마땅한 일이다(과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그런 역할을 했었고, 올해부터는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가 젊은 작곡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시작한다). 창작아카데미 사업이 관현악곡 위주로만 진행된다면 최근 젊은 작곡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 아창제나 오작교 프로젝트와의 차이가 뭐냐고 지적한 지휘자도 있었다.

2019년부터 지원 대상 범위가 음악의 전 분야로 확대되었음에도 여전히 오케스트라 곡을 시도하는 젊은 작곡가들이 주를 이룬다. 젊은 작곡가들의 관심사가 제한적인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창작아카데미는 오케스트라 작품 발표로만 인식되어 응모 자체를 안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더 많은 20~30대 음악 창작자들에게 자신의 예술적 성장을 도모하는 기회로 제공되길 바란다.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나 큰 편성의 곡을 연주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창작아카데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고민이 얼마나 해결되었고 이후 창작 방향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가이다. 차세대 작곡가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