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이하 오작)이 복간된 후 어느덧 7년의 세월이 흘렀다. 9호부터 22호까지 14권의 책 속에 담긴 흔적들을 돌아보니 적잖은 변화가 엿보인다. 편집위원회 구성도 달라졌고 필진의 스펙트럼도 조금은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음악창작의 현장이 다채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오작은 그 현장을 기록하고 시의성 있는 음악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시작한 지면이다. 누구나 주목할 만한 작업도 간과해선 안되겠지만, 눈에 띄지 않아도 유의미한 시도를 이어가는 창작자들의 활동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긴다.
이번 호 【좌담】에서는 음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하는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음악가들의 긴밀한 파트너이자 실질적인 창작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플랫폼 운영자ㆍ아티스트 매니저ㆍ프로젝트 매니저ㆍ프로듀서ㆍ기획자ㆍ연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 부딪히는 이들의 고민을 들어볼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흐름과 진단】에는 세 편의 글이 실렸다. 전지영은 공적 기금의 노예가 된 예술 활동이 힐링과 계몽의 덫에 갇혀 생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들여다보며 ‘탈머리굿’으로 그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함을 역설한다. 라예송은 전국 대학의 국악 작곡과 입시요강에서 드러나는 서양 작곡 콤플렉스를 지적하며 국악창작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반문한다. 또한 이건명은 전통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오랜 지역 예술 활동 경험을 꼼꼼히 되짚으며 그 한계와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동안 【작가와 작품】에는 초창기 한국 작곡가부터 현재 3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음악 창작자들을 작가론ㆍ인터뷰ㆍ창작노트ㆍ자문화 기술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조명해왔다. 이번 호에는 영남 음악계의 구심점으로 활동했던 이상근의 탄생 100주년 기념 글, 네덜란드에서 작곡가이자 퍼포머로 활동 중인 강지연과의 밀도 있는 인터뷰, 현대음악의 정형화된 세계를 넘어 멈춘 시간 안에 숨어있는 움직임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가는 양지선의 글, 2022년부산비엔날레의 뮤직비디오 <영도이로구나>에 참여했던 박민희의 작업기가 실렸다. <영도이로구나>는 여러 사람의 공동 작업에다 지역행사를 위해 요청된 것이었음에도 지역을 다루는 관점에서나 전통을 소재로 삼는 방법에서나 긍정적인 사례로 읽힐 만하다.
오작은 꼭 다뤄야 하는 사안을 담지 못하는 편집진의 열악한 조건을 늘 안타깝게 여겨왔다. 시선이 너무 서울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눈을 돌려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공연들을 직접 찾아가 듣고 남기기엔 현실적으로 힘든 지점이 존재한다. 그래도 자본과 인력이 집중된 곳을 벗어나 분투하는 곳곳의 시도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만큼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이번 【창작의 현장】에 실린 일곱 편 중 네 편이 서울 바깥의 공연을 다루고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의 창ㆍ제작 공연 <마디와 매듭>, 통영에서 열린 TIMF아카데미 콘서트 리뷰과 함께, 베를린에서 열린 ‘정가악회’의 창작음악 프로젝트와 런던에서 만난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가 그것이다. 그밖에 추다혜의 <광, 경계의 시선> 리뷰, 현대음악앙상블 ‘소리’의 창작곡 프로젝트3 작곡가 전현석의 공간 음악 리뷰,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프로젝트 III 참여기가 실렸다. 그간 창작 음악 공연 리뷰 외에 작곡가의 참여기도 포함되곤 했는데, 이번 호에도 윤혜진과 김지향이 각각 정가악회와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작업에 참여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작곡가의 시선에서 기록했다. 리뷰할 공연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에 맞는 필자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렵다. 이번에는 비슷한 세대거나 관련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원고를 부탁해보았는데,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생각된다.
작은 책자이긴 하나 실린 글 하나하나에 필자들의 고뇌와 경험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매호 발간을 이어가는 일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22호를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복간 이후 지금까지 오작을 함께 만들어오신 편집위원들께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보상이 별로 없음에도 가치 있다 여기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노고를 쏟을 수 있는 분들과 함께하는 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보게 하는 일이다.
2023년 2월
편집위원 이희경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22』 (2023), 149~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