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코네와 류이치 사카모토

이 두 음악가의 삶은 왠지 모르게 비슷한 울림을 준다.

방학 중에 다큐 영화 <엔니오: 마에스트로>를 보고, 류이치 사카모토 추모전을 다녀와 그의 마지막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읽었다.

엔니오 영화는 현대음악사 수업 듣는 학생들도 한 번 씩 보면 좋을 만큼, 1950~60년대 현대음악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모리코네 덕에 스승인 고프레도 페트라시(Goffredo Petrassi, 1904-2003) 이름도 알게 됐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다닐 때 스트라빈스키가 지휘하던 모습을 멀리서 봤던 얘기도 나온다. 다름슈타트 음악제 언급할 때 존 케이지 <워터 워크> 퍼포먼스 영상도 등장하는데, 이건 미국 TV 쇼에서 했던 거라 살짝 내용과 안 맞기도 했지만, 여하튼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미션>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 때도 음악상은 못 받고, 2006년 겨우 공로상 준 다음에, 2015년에서야 뒤늦게 음악상을 안겼던 것도 몰랐던 내용. 공로상 받을 때 이 상은 자기 부인이랑 함께 받는 거라는 소감도 마음에 들었고. 암튼,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모리코네 다큐 영화 잘 남긴 듯. 모리코네 음악이 나오는 영화들은 희한하게 그 영화를 봤을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소환해낸다. (페트라시라는 작곡가의 작품은 1976년 성악가 신영조 선생이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유학 후 1976년 귀국독창회 할 때 한국에서도 연주된 적이 있다고 한다. 신영조 연구 중인 후배의 말)

작곡가의 어린 시절과 20/30대 작업이 상세히 다뤄져서 이 작곡가를 새롭게 보게 됐다. 1980 ~90년대 영화들이야 워낙 유명하고 내 청춘과도 오버랩되서 과거가 소환되기도 했고. 작곡가의 삶에 대해 많은 걸 보여주는 영화다. 90대의 나이임에도 형형한 눈빛, 아침에 일어나 카페트 깔린 방에서 스트레칭(요가 동작) 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20세기 후반 이탈리아 대표 작곡가로 루이지 노노(1924-1990),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와 함께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도 포함해야 하는 거 아닐까.

류이치 사카모토(1952-2023)는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유명하지만, 청소년기부터 존케이지, 백남준, 플럭서스 운동에 영향 받으며, 장르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소리를 탐색해온 현대 음악가이기도 하다. 2018년 음악 활동 40주년을 기념하며 ‘피크닉’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6개월간 열렸던 전시회는 실험 음악가로서 그의 면모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때 쓴 칼럼 링크 https://leeheekyung.kr/2018/08/23/column-180823/

올해 초 사카모토가 타계한 후 ‘피크닉’에서 다시 추모전을 열었기에 다녀왔다. 어둡고 작은 공간에서 평생에 걸쳐 수만 번은 쳤을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마지막 연주가 영상으로 흘러나오는데, 솔직히 너무 유명하고 흔해서 지나칠 법한 순간, 모든 것을 덜어내고 덤덤하게 연주하는 음들이 귀를 사로잡았고, 멈춰 서서 그 짧은 연주를 보며 가슴이 멍해졌다. 한 음악가의 치열했던 인생 전체가 그 단순한 곡조에 실려 있는 느낌.

사카모토의 마지막 자서전은 3월 28일 오전 4시 32분 숨을 거두기 전까지 12년 간 한 음악가의 마지막 행적을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병원 병상에 누워서 본인이 관여한 일들을 진두지휘하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하는가 하면, 본인의 장례식 플레이리스트도 꼼꼼히 체크. 장례식에서 흘러나온 33곡들은 알바 노토, 엔니오 모리코네, 니노 로타와 빌 에반스 재즈 트리오, 사티, 드뷔시, 바흐, 스카를랏티, 라벨, 타케미츠 등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흐와 드뷔시 곡이 많았고.

71년의 삶이 이다지도 밀도있게 전개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일본의 지적, 문화적 저력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한국 사회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더더욱… 식민지와 급격한 개발 이데올로기 속에서 제대로 된 사유 체계와 지성이 형성되긴 어려웠던 건 아닌가… 사카모토 덕에 한국 가수 손디아도 알게 됐다. <미스터 선샤인>도 봤단다. 사카모토다운 선택. 들뢰즈의 자살이 천식으로 고통받으며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였다는 건 처음 알았다. 들뢰즈의 죽음이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건, 윤이상이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 날이었기 때문. 그것도 본인의 아파트에서 투신했기에. 베를린 유학 가자마자 들은 두 거장의 부음 소식. 1995년 11월 초 스산했던 그때의 느낌들이 소환되었다.

언젠가 사카모토의 삶과 음악을 20~21세기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서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23.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