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베를린 음악축제(Musikfest Berlin)는 진은숙의 세 작품, 첼로 협주곡(2008~9/2013), 생황 협주곡 <슈>(2009), 관현악 협주곡 <스피라>(2019)를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축제 시작 전 독일의 클래식음악 웹진 concerti에 실린 진은숙의 인터뷰를 한글로 옮겼다. 원문 링크는 아래.
“Zu viel Respekt und Ansehen sind ungesund.”
헬게 비르켈바흐(Helge Birkelbach) 2023.08.20.
자네는 이전에 썼던 곡들을 모두 내다 버려야 하네. 1985년 진은숙이 죄르지 리게티와 공부를 시작했을 때, 리게티가 그녀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이 작은 체구의 한국인 작곡가는 이 모욕적인 말을 받아들이고 바로잡을 만큼 강인했다. 고집불통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고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로마이어상(Grawemeyer Award)을 비롯한 여러 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살아온 베를린에서 이제 그녀는 강렬한 작품 세 곡으로 음악축제를 대표하고 있다.
죄르지 리게티가 모든 음악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을 때 충격적이지 않았나요?
물론 충격이었죠.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나만의 언어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타불라 라사! 문제는 그가 아니라 저였으니까요. 제 세상은 너무 좁았고,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어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먼저 이해해야 했어요.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죠. (웃음) 함부르크에서 리게티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 힘들었어요. 여러 레슨을 그냥 놓쳤는데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죠. 더 자주 갔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거의 3년 동안 작곡을 중단하기도 했어요. 결국 베를린으로 이사한 뒤 베를린 국립음대 전자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작곡과 다시 인연을 맺었죠. 지금은 더 이상 전자음악을 작곡하지 않고 작곡할 때 컴퓨터나 다른 보조 도구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것은 저에게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열세 살에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셨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아니면 무조건적인 의지였나요?
학교 음악 선생님이 작곡가였어요. 그분은 저에게 몇 번 피아노 레슨을 무료로 해주셨어요. 어느 날 선생님은 모차르트의 <소야곡>을 피아노가 아닌 다섯 개의 현으로 연주하면 어떤 소리가 날지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했고, 그 곡을 보더니 작곡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당시 성악을 공부하던 언니가 화성에 관한 책을 집에 가져왔는데, 저는 그 책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작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음악도 들었죠! 부모님은 검소하게 사셨고 적은 돈으로 생활해야 했어요. 하지만 학교에는 많은 음반이 있었고, 저는 베토벤, 브람스,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어요. 차이코프스키와 스트라빈스키도 많이 들었죠.
그리고 나서 공부를 시작하셨나요?
아니요, 작곡을 공부할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걸 독학으로 배웠죠. 결국 서울대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두 번이나 시험에 떨어졌어요. 규정도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웠죠. 이 실망은 저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국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회적 인맥이 있고, 시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리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음악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어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기분이 듭니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죠. 그렇다고 해서 슬픈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사실 저는 아웃사이더가 되려면 그런 게 필요해요. 지나친 존경과 명성은 해로우니까요. 저는 그런 지위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세 번째 입시에선 붙은 건지…
네, 아마도 그해 지원자가 미달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웃음) 당시 제 인생은 살얼음판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유럽으로 갔어요. 함부르크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DAAD 장학금이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죠. 다행히도 리게티와 함께 공부했고요. 그는 ‘넌 환상적이야, 그렇게 계속 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랬다면 저는 완전히 망가졌을 거예요. 과한 칭찬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됩니다. 상을 받았을 때조차 내면의 목소리가 저에게 말하죠. ‘그건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베를린 음악축제에서 첼로 협주곡을 포함한 세 곡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2008년과 2009년은 저에게 매우 창의적인 시기였습니다. 2001년 알반 게르하르트와 만난 후 BBC 프롬스에서 첼로 협주곡 작곡을 의뢰받았죠. 그전에는 제 음악이 다소 추상적이었고 개인적이지 않았어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습니다. 2007년 첼로 협주곡이 초연될 예정이었죠. 알반 게르하르트는 이미 협연자로 예약되어 있었지만 저는 아직 한 음도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서 초연이 2008년으로 미뤄졌는데 그때도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마침내 이 생산적인 국면에서 그것을 해냈습니다. 그 직후 저는 쉬지 않고 고대 중국 생황을 위한 협주곡 <슈>를 작곡했어요. 8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 <구갈론>을 작곡했고요. 어떤 영혼이 저를 사로잡은 것 같았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어요.
笙(중국 생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생은 3,500년 이상 된 악기입니다. 한국의 전통음악에서는 생황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아요. 중국에서와 달리 이 악기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음고 변동(농현)을 많이 사용하는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 이상에 맞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생황은 배경으로 더 많이 연주되고 독주로는 사용되지 않았어요. 오늘날의 악기들은 엄청나게 다재다능합니다. 키클릭 메커니즘을 통해 반음계, 다성 및 엄청난 음역이 가능해졌고, 이 점이 음향적 다양성과 다이내믹의 가변성과 함께 이 악기를 매력 있게 하는데 기여합니다. 거기다 연주자에게 요구되는 아주 높은 수준의 기량도 추가되죠. 숨을 내쉴 때와 들이쉴 때 모두 소리가 만들어지거든요. 이 악기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을 동시에 연주할 수 있어서 아주 다양한 화음을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할 수 있습니다. 음색 면에서도 이 악기는 현악기, 목관악기, 타악기 등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모든 그룹과 매우 잘 어울립니다. <슈>에 대한 제 콘셉트는 악기의 규모에 따라 연주하는 거였어요. 전체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생이고, 독주 악기와 함께 하면 ‘하이퍼 생’이 되는 거죠.
이 악기를 언제 처음 들으셨나요?
어렸을 때 시골 어딘가에서 비 오는 날 멀리 떨어진 산에서 들었습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그 소리에 즉시 매료되었어요. 그 소리는 제 안의 엄청난 갈망을 일깨워줬죠. 그러다 베를린의 한 결혼식에서 중국인 비르투오소 우웨이를 만나면서 이 악기를 재발견했습니다. 그때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우웨이가 마지막에 연주를 했어요. 그 사람 전체, 그 몸 자체가 그냥 음악이었습니다. 기절할 뻔했어요! 실제로 제가 놀라는 얼굴을 볼 수 있는 비디오 녹화가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즉시 그에게 말했죠. 내가 무조건 당신을 위해 곡을 써야 한다고요. 그는 지금까지 총 200곡에 가까운 신작을 초연했습니다. 탁월한 음악가예요.
이번 음악제에서는 <스피라>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스피라’라는 말은 나선형처럼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화음 구조를 뜻합니다. 유명한 줌 효과가 있는 히치콕 영화 <현기증>에서처럼 어지러운 움직임이죠.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 베이스가 연주되면 발 아래 바닥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공간에서 음향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또한 추측하는 것과는 사고 면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작은 파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제목은 17세기 수학자 야콥 베르누이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피라 미라빌리스’의 개념을 느슨하게 표현한 것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달팽이 껍질의 모양, 나선형 은하, 해바라기 꽃의 핵 배열을 생각해보세요. 성장과 변태의 생물학적 과정이 저에게 기초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핵에서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복잡한 텍스처가 발전해 갑니다. 자연과학, 물리학, 심지어 우주론적 개념도 제 작품에 많은 부분 영감을 주었습니다.
키워드 영감: 아이디어는 어떻게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그걸 알았다면, 가르쳐서 그걸로 돈을 벌었겠죠. 첫째는 특정 뇌 구조와 관련이 있을 거고, 둘째는 항상 호기심을 유지하는 자신의 태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하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불만족스럽기에 더 나은 걸 원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면, 더 이상 할 일이 남지 않겠죠. 그렇지 않나요?
당신의 일상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루의 리듬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매우 충동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장성한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일상은 즉흥적이에요. 다행히 아들은 이사를 나갔어요(큰 웃음)!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1988년부터 베를린에서 살고 계십니다. 이 도시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베를린은 아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도시입니다. 그것이 제가 베를린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점이에요. 한편으로 이 도시는 매우 국제적이고 세계시민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몇 거리만 더 가면 소시지 가판대와 코너 펍이 주를 이루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베를린은 평행 세계의 도시예요.
2023.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