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주, 한국 현대음악사의 소중한 한 조각 (정윤주100주년기념선집 6권 실내악곡 발간을 기념하며)

작곡가 정윤주 선생은 현대 한국음악사에서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고유한 개성을 지닌 인물이다. 토목기사로 살며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고, 제도권 교육 대신 스스로 스승을 찾아다니며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해방 이후 음악교육 및 영화음악의 현장에서 실질적인 작곡 경험을 축적했고, 대학에 자리 잡지 않고 전업 작곡가로 활동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작품을 발표한 흔치 않은 존재다.

지난 2018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이 다시 연주되고 곳곳에서 추모의 글들이 발표되었다. 한 30대 연구자는 “한국 작곡계에 유례없이 독특한 빛깔을 지닌” 정윤주가 제도권 교육이나 주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이유로 외면되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예술 분야에서 역사의 심판관은 오직 ‘시간’이다. 살아생전의 지위나 영향력, 유명세는 세월이 흐르며 퇴색되기 마련이고, 그 활동의 의미는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잊힌 것처럼 여겨져도 이후 다시 소환되어 조명되는 예술가들은 삶 전체를 걸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이들이다.

정윤주는 20세기 한국음악사에 누구보다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김순남, 김순애, 김희조, 나운영, 박재훈, 윤용하, 윤이상, 이건우, 이상근, 조념 등과 같은 세대로 묶일 수 있지만, 그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활동영역을 개척함으로써 한국음악사의 소중한 한 조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띠는지는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작곡가 임동혁과의 관계, 1950~60년대 미공보원 영화제작소와 국립 영화제작소에서의 작업, 수많은 선구적 영화음악과 다양한 편성과 장르의 작품들 등, 20세기 후반 한국음악사에서 정윤주 창작 활동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에 관한 연구는 이제 후학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이 연구의 중요한 출발은 작곡가가 남긴 악보와 자필 기록들이다. 한국음악사 연구의 열악함과 제대로 된 연구기관의 부재로 많은 기록이 유실되고 사라진 상황에서, 자손들에 의해 이 귀중한 자료가 정리되어 출판되는 일은 무척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2018년 정윤주탄생100주년기념사업으로 시작한 출판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며, 2024년에는 여섯 번째 시리즈로 실내악곡 모음집이 출간된다. 정윤주의 첫 작품인 <현악사중주곡>(1950)부터 말년작 네 대의 첼로를 위한 음시 <봄날>(1996)에 이르기까지 약 반세기에 걸친 작품 10편이 수록되었다. 여러 조합의 플루트 곡들을 비롯해 아쟁과 피아노, 가야금과 첼로 이중주곡들, 22인 편성의 앙상블곡 <변율>(1974)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의미 있는 아카이브 작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계신 작곡가의 3남 정대은 선생께 한국음악사 연구자로서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번 악보 발간을 통해 정윤주의 실내악곡이 탁월한 한국 연주자들의 마음에 가닿아 계속 연주되며 울려 퍼지길 바란다.

『정윤주 실내악곡 모음집』(작곡가 정윤주 탄생100주년 기념선집 Vol. 6) (2025.4.30.), 11~12.